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일 "중장기 산업정책 방향" 보고서에서 실패위험
이 높은 미래형 신산업보다는 기존 주력산업의 고도화에 정책역량을 집중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식 제기했다.

KDI는 내주중 이같은 내용의 중장기 산업전략을 청와대에 보고할 예정이다.

KDI는 전자 자동차 조선 등 기존 주력산업은 지식집약화 과정을 통해
선진국형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비해 생명과학 신소재 항공우주 등 미래형 신산업은 지식집약도가
빈약한 경제 현실에선 실패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 기반과 자본이 부족한 경제 현실을 감안할 때 단기간내에 선진국
수준의 기술혁신 체제를 구축하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산업정책은 당분간 신산업 육성보다는 주력산업 고도화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산업자원부와 산업연구원(KIET)은 성장한계에 직면한 기존 주력산업
대신 정보통신 신소재 등 첨단 신산업을 새로운 주력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신산업론과 전략산업고도화론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간추려 싣는다.

< 유병연 기자 yoo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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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오 < 삼성경제연구소 이사 >

지식집약적인 신산업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기존 주력산업을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주력산업 구조조정이 어느정도 진전된 다음에 신산업 육성을 얘기해야
한다.

대기업간 빅딜 합의가 이뤄지긴 했지만 구조조정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기업들이 충격에서 벗어나게 되면 정부에서 신산업 육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진출할 것이다.

당분간은 신산업 육성보다는 주력산업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추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지위 확보 측면에서도 주력산업을 지키는 것이 유리
하다.

조선 반도체 등 몇몇 주력산업은 지난 1년간 우리 경제를 지탱해준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세계시장에서 통용되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동차도 "글로벌 스타"로 도약할 수 있는 유망 산업이다.

기업들이 기술개발과 세계시장 개척을 통해 보여준 가능성을 평가절하해선
안된다.

신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강자를 키우는 것은 한국경제의 현재 역량을
감안할때 가능성이 낮은 일이다.

산업발전은 국가 전체의 실력이 뒷받침돼야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

신산업 분야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탈리아 패션산업이 강한 것은 로마의 예술적 유산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냉전기간동안 축적한 군사기술을 바탕으로 정보통신 혁명을 주도
하고 있다.

한국은 신산업에 관한한 기초가 허약할 뿐 아니라 창의적 고급두뇌가 능력
을 발휘하는 것도 어렵다.

소수 기업이 신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는 척박한 토양을
극복해낸 예외적인 사례다.

신산업은 국가개조가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지 의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기업 현장을 봐도 신산업 육성은 현실성이 약하다.

IMF 사태는 신규사업에 대한 투자를 어렵게 만들었다.

여기에 재벌개혁과 빅딜이 가세, 불확실성을 더욱 높였다.

특히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축소를 요구하는 내부거래 제재와 재무구조
개선 요구 등이 정책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기업들은 미래지향적 투자를 줄이고 핵심인력들을 해고하는 방식으로 IMF
한파에 적응하고 있다.

이로인해 무형자산 멸실이 심각한 실정이다.

신산업 육성은 기업들이 제자리를 잡은 후 최고경영자가 집념을 갖고
도전에 나설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