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의 거리에 자선냄비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이제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효시는 1891년12월24일 밤 미국 샌프란시스코 항에
떠밀려온 난파선의 승객과 선원들을 위해 거리에 내건 "국냄비"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 승객과 선원들이 구세군 회관을 찾아 도움을
청했지만 그들에게 줄 것이 없었다.

한 여사관이 급한 김에 거리에 냄비를 걸어놓고 "조난 당해 굶주림에 떨고
있는 그들을 위해 이 냄비를 끓게 해주십시오"라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
의외로 반응이 좋아 해마다 자선냄비 모금이 행해졌다는 것이다.

12월은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와 캐럴 송으로부터 시작된다.

거리에는 대형 트리가 설치되고 사람들은 두툼한 외투 속에 몸을 움츠리며
무엇인지 모를 일에 조급해 한다.

누구에게나 하루에 스물 네시간이 주어지고 일년이면 열두 달이 주어지지만
일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은 마음 한 자락에 아쉬움이 남아있는 달이다.

지난 열두 달에 걸쳐 행하거나 또는 이루었지만 등한히 했던 일, 혹은
마무리짓지 못한 일,아니면 아예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 후회 속에서
시간만 놓쳐버린 때문인지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물결이 스쳐간 뒤의 흔적같은 공허와 황량감이라고 할까,
아니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그렇게 12월은
서운한 날이다 해서 시인 사무엘 콜리지는 그의 "송년부"에서 이렇게 읊은 것
같다.

"저문 해, 그 치맛자락 나는 보았네"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내며 파티를 연다.

그간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과 술잔을 들어 축배를 든다.

일년 동안에 걸쳐 흩어져 있는 모든 영상들을 한 잔의 술 속에 응축시켜
마신다.

노래도 부른다.

그리고 소원했던 이들에게 편지를 띄우고 카드도 보낸다.

정성이 담긴 선물도 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시작이 있으며 종말이 있는 것처럼 원단이
있으면 제야가 있게 마련이다.

이제 마지막 달력에 도돌이표를 찍으며, 새해에는 다시 힘차고 희망찬
일월로 시작했으면 하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