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분명히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었다.

한국은 경제가 가진 병의 증상을 제거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원인을 제거
하는 데는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병은 외환위기라는 형태로 왔다.

그 증상은 추가 외환차입, 상환연기 등 해열제 투입으로 일단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 원인인 한국경제의 고질병, 즉 부채위기와 생산성 위기는 아직
전혀 치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1968년 무렵 부채 규모가 GDP의 3백50%에 불과했다.

그런데 작년에는 그것이 거의 6백50%에 달했다.

10년간 부채가 매년 복리로 16%씩 불어난 것이었다.

그 기간 동안 임금은 매년 평균 10%씩 늘었다.

생산성이 5%라는 적지않은 규모로 매년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그렇게 크게 늘어나는 상황은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해서 벌어들인 것보다 더 많이 쓰고 부족한 것은
이리저리 빚을 내 메꿔 오던 경제가 무너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제기한 문제는 이렇게 빚을 내 쓰던 버릇이 쉽게 고쳐지겠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참석자의 다수는 한국 경제가 회복하는데는 최소한 5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재벌개혁의 핵심은 빅딜도 상호지급보증 해소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 잘 하는 최고경영자는 계속하게 하고 일 못하는 경영자는 쉽게
바꿀수 있는 체제, 즉 기업 지배구조를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포철이 다른 재벌들과 달리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체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혹시 가장 가려운 데는 두고 엉뚱한 곳을 긁어대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모습들이었다.

< 전성철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