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오하우스사는 초정밀 전자저울을 만드는 기업이다.

1907년 미국 뉴저지 플로햄파크에서 설립된 이 회사는 그동안 기술개발
중심의 경영을 해왔다.

그러나 5년전부터 글로벌 마케팅과 고객지원 서비스에도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울의 이름도 보이저 익스플로어 내비게이터등으로 바꿨다.

오하우스의 경영이 이같이 진취적으로 바뀐 것은 폴라 말렝키 부사장의
과감한 도전정신 덕분이었다.

말렝키 부사장은 늘씬한 키에 아주 온화한 인상이다.

그러나 경영전략을 얘기할 땐 결코 온화하지만은 않다.

강인해보인다.

그녀는 "지난 18년간 오하우스에 근무하면서 단 한번도 남녀를 구분하면서
일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회사가 실시하는 "상황별 리더십 연수"등에 어떠한 남자들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는데 노력해왔다는 것.

그녀는 어려서부터 고객지향적인 생활에 익숙했다고 얘기한다.

미국 버몬트에서 태어난 말렝키 부사장은 세일즈맨인 아버지로부터 매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란다.

그녀는 성엘리자베드대학에서 경영마케팅을 전공하고 인디애나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뒤 드렉셀대학에서 전시경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뒤 산도스의 실험실에 근무했는데 실험실안에 박혀있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아 부동산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이어 오하우스에 입사하자 "이곳이야말로 내가 모험을 걸어볼만한
회사"라는 점을 직감했다.

무엇보다 이 회사의 기술개발능력에 놀랐기 때문이었다.

이런 기술에 마케팅력이 보강되면 틀림없이 세계적인 기업이 될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

그는 전시마케팅 사업부를 맡으면서 매년 전세계 50개 국제전시회에
참가하는등 역동적인 전략을 폈다.

이같은 다이내믹한 전략 덕분에 오하우스는 현재 종업원 3백75명의
중소기업이면서도 세계적인 저울 업체로 떠올랐다.

올해로 결혼 20주년을 맞는 그녀는 지금도 1년에 4개월정도는 해외에서
보낸다.

10개국에 있는 현지법인들을 다 관리하려면 가정생활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첨단전자분야 기술자인 남편이 빨래도 해주고 설거지도
잘 거들어줘 다정하게 살고 있다"고 자랑한다.

회사일을 설명할 땐 도전적이던 표정이 가족얘기를 할 땐 다시 온화한
얼굴로 되돌아온다.

< 이치구 기자 rh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