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은 지금...] (클로즈업) 박종윤 <국제특수금속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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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특수금속 박종윤(63) 회장은 우리나라 자동차 엔진베어링업계의
산증인으로 통한다.
지난 82년 포니자동차의 엔진베어링을 국내 최초로 개발, 1백% 수입대체
시킨 주역이 바로 박 회장이기 때문.
박 회장의 엔진베어링은 성능도 뛰어나 2,3년만에 보링을 해야 하는 일본
제품과 달리 거의 폐차때까지 사용이 가능했다.
박 회장은 "엔진베어링은 자동차부품 가운데 가장 고난도의 핵심부품"이라며
"엔진베어링의 국산화는 자동차산업의 독자성을 확보한 것과 마찬가지 의미"
라고 강조했다.
대학졸업 후 30대 초반에 운수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를 거듭했던 박
회장은 지난 75년 베어링 생산업체인 한국특수금속의 경영을 맡은 것을
계기로 베어링사업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부도난 이 회사를 당시 잘 나가던 국제전기가 인수하려 하자 박 회장은
"지역민에게 기회를 달라"며 5%의 지분으로 경영에 참여한 것.
이후 놀라운 경영수완으로 회사를 단시간내에 반석 위에 올려 놓은 박
회장은 지난 82년 경영권을 확보하고 독자경영의 길을 걸었다.
기술개발에 대한 집념이 남달랐던 그는 87년에는 일본 NDC사와, 88년에는
미국 FM사와 합작으로 한국드라이베어링과 한국에프엠을 설립했다.
선진기술 습득을 위한 일련의 조치였다.
하지만 박 회장은 최근 엔진베어링의 개발 및 생산부문은 두 합작회사에
넘겨주고 자신은 국제특수금속을 통해 유통업 진출을 준비중이다.
롯데백화점과 함께 대전시 용문동 공장부지에 오는 2003년 개점목표로
대단위 쇼핑센터를 건립한다는 계획.
이곳에서 나오는 이익을 엔진베어링사업에 투입하겠다는게 박 회장의
생각이다.
박 회장은 엔진베어링 국산화 등 산업기술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83년
대통령이 수여하는 산업포장과 지난 10월 한국인사관리학회가 주는 경영자
대상을 받기도 했다.
< 대전=이계주 기자 leeru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5일자 ).
산증인으로 통한다.
지난 82년 포니자동차의 엔진베어링을 국내 최초로 개발, 1백% 수입대체
시킨 주역이 바로 박 회장이기 때문.
박 회장의 엔진베어링은 성능도 뛰어나 2,3년만에 보링을 해야 하는 일본
제품과 달리 거의 폐차때까지 사용이 가능했다.
박 회장은 "엔진베어링은 자동차부품 가운데 가장 고난도의 핵심부품"이라며
"엔진베어링의 국산화는 자동차산업의 독자성을 확보한 것과 마찬가지 의미"
라고 강조했다.
대학졸업 후 30대 초반에 운수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를 거듭했던 박
회장은 지난 75년 베어링 생산업체인 한국특수금속의 경영을 맡은 것을
계기로 베어링사업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부도난 이 회사를 당시 잘 나가던 국제전기가 인수하려 하자 박 회장은
"지역민에게 기회를 달라"며 5%의 지분으로 경영에 참여한 것.
이후 놀라운 경영수완으로 회사를 단시간내에 반석 위에 올려 놓은 박
회장은 지난 82년 경영권을 확보하고 독자경영의 길을 걸었다.
기술개발에 대한 집념이 남달랐던 그는 87년에는 일본 NDC사와, 88년에는
미국 FM사와 합작으로 한국드라이베어링과 한국에프엠을 설립했다.
선진기술 습득을 위한 일련의 조치였다.
하지만 박 회장은 최근 엔진베어링의 개발 및 생산부문은 두 합작회사에
넘겨주고 자신은 국제특수금속을 통해 유통업 진출을 준비중이다.
롯데백화점과 함께 대전시 용문동 공장부지에 오는 2003년 개점목표로
대단위 쇼핑센터를 건립한다는 계획.
이곳에서 나오는 이익을 엔진베어링사업에 투입하겠다는게 박 회장의
생각이다.
박 회장은 엔진베어링 국산화 등 산업기술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83년
대통령이 수여하는 산업포장과 지난 10월 한국인사관리학회가 주는 경영자
대상을 받기도 했다.
< 대전=이계주 기자 leeru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