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길 절벽이 흰구름 떠도는 푸른 하늘에 닿았다.

달려 내리는 물은 돌개바람에 부딪혀 뽀얀 물안개로 변한다.

천만올의 비단실로 서로 감길락 말락할 적에 가벼운 바람이 분다.

물안개는 하늘공중으로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

마치 흰무지개가 허공에 매달린 것 같다"

금강산 비룡폭포를 노래한 어느 무명시인의 시다.

폭포의 웅장한 자연미가 시인으로 하여금 비경을 읊게 한 것이다.

춘원조경 김정선(39)대표.

그는 이런 자연미를 도시공간에 재현하는 일을 한다.

폭포 나무 정자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을 정원이란 이름으로 옮겨온다.

그의 작품은 사람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듯하다.

의당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은 토속음식처럼 재료 맛이 진하게 우러나온다.

김씨는 석축의 1인자로 통한다.

지난 20여년 동안 옹벽 정원 등 돌쌓는 작업에만 몰두했다.

전통정원의 백미로 꼽히는 경주보문단지 연못, 청와대 안가 무궁화동산,
경주안압지 연못 구석 구석에 그의 손길이 배어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것은 2년도 안된다.

지난 18년 동안 김춘옥옹 밑에서 수제자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96년 타개한 김옹은 50년간 전통정원 분야를 개척한 명인이자 바로 그의
부친이다.

김옹은 제대로 된 작품을 얻기 위해 조그마한 흠이 있는 도자기라도
여지없이 부숴 버리는 도공처럼 엄격했다.

명성덕분에 대형 국책공사와 관료 기업인들의 정원공사를 도맡았지만
가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렸다.

작품성만 따지다 보니 한번 구상을 하면 몇 번을 뜯어 고쳐야 직성이
풀렸다.

보다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기 돈을 들이는 것도 다반사.

그러다보니 공사가 늦기 일쑤여서 돈을 남길 수가 없었다.

4남중 3남인 김정선씨가 조경에 발을 디딘 것은 지난 7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러나 부친의 엄격함은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삽질하고 돌을 나르는 일용 잡부와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았다.

작품을 만들 능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부친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지없이 지팡이로 머리를
내리쳤다.

밥상머리에서 조경이외의 말을 끄냈다간 그날은 밥상이 엎어지는 날이었다.

가업을 잇겠다고 나섰던 두 형들도 부친의 이런 "괴팍한" 성격을 견디다
못해 중도에 포기했다.

그러나 그는 차마 조경의 매력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고달픈 생활이었지만 무생물인 돌덩이를 작품으로 되살아나게 하는 과정이
너무 신기했다.

어느덧 그의 가슴속엔 자연과 어우러지는 한 폭 풍경화 같은 명작을
남기는 것이 인생의 목표로 자리 잡았다.

그는 매일 일이 끝나면 작업도를 그렸다.

부친이 왜 이런 방식을 취했는지 터득하기 위해 밤을 세웠다.

주말이면 대천 보령 등 돌산지를 돌아다녔다.

작품에 적합한 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남들보다 작업장에 먼저 나와 구상을 하고 미비점을 보완했다.

이러기를 14년.

그때서야 부친은 그를 수제자로 받아들였다.

부친이 별세한 지난 96년 그는 재정적 어려움에 빠졌다.

돈이 없어 한때 남의 밑에 들어가 일을 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김춘옥 조경연구소"란 간판을 이어가는게 자신의 "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친의 지인들이 창업자금을 빌려줬다.

조건은 부친의 명예를 지키고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것.

지난해 춘원조경을 세웠다.

올초엔 조경업계에 화려한 데뷔를 했다.

서울 여의도 5.16광장을 헐고 그 위에 공원을 꾸미는 사업에 참여한 것.

여기에서 그는 연못이 있는 전통조경을 재현하는 일을 맡았다.

4억원에 불과한 공사였지만 명성을 믿고 일을 맡겨준 발주처에 보답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돌 하나 나무 하나에도 세심한 신경을 썼다.

이 작업은 그를 단번에 대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부친이 못다 이룬 작품을 재현하고 싶습니다.

1백여장의 도면이 남아 있지만 작품화되지 못한 것들입니다.

한국정원분야에서 한 횟을 그은 그분의 업적과 기술을 지켜나가는 것이
저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말이지만 그속엔 청출어람의 의지가 서려있다.

< 김태철 기자 synerg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