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위원회가 밝힌 일부 정부 산하단체의 "눈가리고 아웅"식 경영혁신
실태는 공공부문 개혁의 "모럴 해저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를 한눈에
보여준다. 민간부문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있는데 비해 공공부문
의 구조조정은 말 뿐임이 이번 기획예산위의 실태조사결과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공공부문이 요지부동임을 어느정도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정부
기관들이 개혁의 시늉만 내면서 국민의 눈을 속이고 있다는 것은 분노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이 조직을 통합하면서 27개 지사를
폐지한 것처럼 보고한 후 민원실로 이름만 바꿔 존속시킨 사례는 "눈속임
개혁"과 "숫자놀음"의 표본이라고 할만하다. 인건비를 줄이라고 하니까 줄어
든 인건비를 보전하기 위해 투자업무에 써야할 사업비에서 22억원을 끌어내
상여금이라는 명목으로 돌려쓴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처사는 민간기업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밖에도 반개혁적 사례가 일일이 열거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공공부문 개혁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정부가 주인이면서도 주인행세를
못해온 상황이 너무 오래 누적됐다는 점이다. 상당수가 주무부처의 낙하산
인사로 임명된 기관장들이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럭저럭
지내다보니 노조의 요구를 너무 쉽게 들어주게 마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합의로 체결된 기존의 조직.인력.급여체제를 혁신한다
는 것은 엄두도 못낼 일이 돼버렸다. 정부산하단체의 경영혁신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낙하산 인사 관행을 철폐하고 반개혁성향의
기관장에 대해서는 엄한 문책이 있어야 한다.

또다른 문제점은 경영혁신 방안을 수립한 정부의 조직적 감독체제가 미흡
하다는 점이다. 이번 실태조사는 기획예산위와 관계부처의 합동조사라고
하지만 조사에 투입된 인력은 고작 36명에 불과했다. 때문에 7백5개 전체
정부 산하기관의 10%도 안되는 64개만을 대상으로한 표본조사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조사대상을 확대했더라면 눈속임 사례는 훨씬
더 많이 드러났을 것이다. 정부는 최대한 인력을 동원해 전면적 조사 감독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 조사결과 경영혁신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곳도
적지 않다. 그러나 당초 경영혁신 목표를 낮게 잡아놓고 목표를 초과달성한
것처럼 위장한 사례도 많음에 비추어 정부산하단체의 구조조정은 전반적으로
시늉에 그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솔선수범해야할 정부산하기관이 이처럼 개혁에 소극적이라면 어느 기업이,
어느 국민이 그토록 고통스런 개혁을 받아들일 것인가. 눈속임을 하더라도
순간만 넘기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적어도 개혁작업에서만큼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부는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