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1일자) 98 한국경제의 의미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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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이 저문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한해를 보내는 감회가 없을 수 없게
마련이지만 아무래도 올해는 느낌이 더한 것 같다. 그만큼 지난 1년은 정말
어려움도 많고 사연도 많았기 때문이다. IMF사태가 몰고온 대량실업,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 그리고 정권교체에 따른 격동과 변화, 그 의미는 내일을
위해 오늘의 우리 좌표를 확인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IMF관리체제 첫해인 98년 경제는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특징
지어진다. 정리해고 교원노조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은 하나같이 가치관의
대변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상징성을 갖는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호오에 대한 시각이 극명하게 마련인 이들 제도가 불가피한 선택으로 귀결지
어진 것은 그만큼 경제상황이 달라지고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 80년이후 18년만에 처음으로 기록한 마이너스 성장은 이제 고도성장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는 것을 분명히한다. 80년과 같은 일과성이 결코 아니
라는 인식은 IMF는 물론 정부가 전망한 내년 성장률이 과거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는 점에서도 확연해진다. 본격적인 감속성장으로의 이행
은 기업 가계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의 오랜 관성은 물론 기본적인 가치관
조차 바꾸도록 강요하고 있다.
외형위주의 기업경영은 수익성 중심으로 바뀌어질 것이 명확해졌다. 이는
기업구조조정과정에서 강요된 것이기도 하지만 기업 스스로를 위한 보수적인
선택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98년중 기업신규투자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불안과 신용경색에 따라 투자 자금조달이 극히
어려웠던 기업외부환경이 신규시설투자를 가로막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른바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면서 성장지향적 가치관이 캐시플로 위주의 안정지향
적 성향으로 탈바꿈한 결과이기도 하다. 회사채발행 등으로 자금사정이 결코
나쁘지만도 않았던 5대 그룹등의 제조업시설투자 역시 극히 부진했다는 점은
그런 측면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같은 기업경영패턴의 변화에 대한 의미부여
나 가치판단은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새로운 성장
에너지를 축적할때까지 상당기간 현상유지적인 저성장을 지속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소비위축에 따른 내수부진은 증폭된 경제불확실성의 필연적 산물이었다.
고용불안 등에 따른 심리적 위축이 소득감소속에서 저축률 증대라는 비정상
적인 상황을 엮어냈고, 그것이 일본유형의 디플레조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국면이기도 하다. 이같은 추세가 장기화할 경우 경기회복에 결정적인
짐이 될 것은 물론이지만 사회안정에도 부작용을 결과할 우려가 없지 않다.
부동산 임대업자는 차치하더라도 호황기에 은행빚으로 건물을 짓거나 매입
했던 중산층의 몰락은 디플레국면이 장기화할 경우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IMF체제이후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가계의 비중이 현저히 줄었다는
등의 의식조사결과 등은 98년이 배태한 사회문제의 일단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리해고제의 도입에 따라 광범위하게 단행된 명예퇴직 등 고용조정이
기존의 "평생 직장"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게될 것이란 점은 이미 예고됐던
일이지만, 어쨌든 98년의 사회적 파장은 우려할 대목이 적지않다.
98년 경제정책은 달라진 경제여건에 맞게 구조조정작업을 벌이는데 그
초점이 맞춰졌다. 당연하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적잖은 딜레마를 수반하는 양상이기도 했다. 정부간여와 개입이 줄어드는
시장경제로 가야한다는 당위, 구조조정이 정부주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간 부조화가 두드러진 꼴이었다고 지적할 수 있다. 관치금융이 오늘의
금융부실을 결과한 근본적인 원인이었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금융
구조조정의 과정과 결과가 은행에 대한 정부영향력을 더욱 강화하는 꼴이 된
것은 그 단적인 사례다. 5대 그룹 빅딜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금융구조조정 등이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고 보면 관주도 구조
조정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역할의 축소와 진정한 시장
경제를 위한 정비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해결이라기 보다는 또다른
차원의 숙제를 남겼다고 하겠다.
외환시장이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는 점은 지난 1년간 경제운용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IMF체제에 들어간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개혁에서 앞서가고 있고
적응력도 뛰어나다는게 대외적인 평가고, 그 결과 국제적인 신용평가기관 및
금융기관들의 반응도 호전되고 있다. IMF체제가 시작된 작년 12월3일 60억달
러를 밑돌았던 가용외환보유고가 8배로 늘어났고, 단기외채의 비중도 20%로
1년전에 비해 반감됐다는 점에서 외환위기는 일단 벗어났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외채가 GDP(국내총생산)의 50%를 웃돌고 1년간 지급해야할
외채이자만도 GDP의 4%에 달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요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쪽은 실물경제, 특히 제조업쪽이다. 가동률이 여전히 60%
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수요부진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제조업체가 쓰러져 유기적인 산업네트워크 그 자체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빠른 시일안에 과거처럼 80%대 가동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21세기에 대비한 생산기반확충과 정비가 절실하다. 투자가 기업의욕의
종속함수라고 본다면 결국 기업인들의 의욕을 되살리는 방안이 시급하다는
얘기가 된다. 빅딜 등 구조조정과정에서 불거진 기업과 정부간 마찰도 그런
점에서 좀더 신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선단식경영의 폐해를
시정할 구조조정도 긴요한 과제지만 기업투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참으로
시급한 여건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외환위기수습 등으로 98년 경제가 그런대로 성과가 있었던데는 사회 각
계층이 위기의식을 함께 했기 때문이지만, 각 경제주체간 신뢰성 확보, 특히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1일자 ).
마련이지만 아무래도 올해는 느낌이 더한 것 같다. 그만큼 지난 1년은 정말
어려움도 많고 사연도 많았기 때문이다. IMF사태가 몰고온 대량실업,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 그리고 정권교체에 따른 격동과 변화, 그 의미는 내일을
위해 오늘의 우리 좌표를 확인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IMF관리체제 첫해인 98년 경제는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특징
지어진다. 정리해고 교원노조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은 하나같이 가치관의
대변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상징성을 갖는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호오에 대한 시각이 극명하게 마련인 이들 제도가 불가피한 선택으로 귀결지
어진 것은 그만큼 경제상황이 달라지고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 80년이후 18년만에 처음으로 기록한 마이너스 성장은 이제 고도성장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는 것을 분명히한다. 80년과 같은 일과성이 결코 아니
라는 인식은 IMF는 물론 정부가 전망한 내년 성장률이 과거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는 점에서도 확연해진다. 본격적인 감속성장으로의 이행
은 기업 가계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의 오랜 관성은 물론 기본적인 가치관
조차 바꾸도록 강요하고 있다.
외형위주의 기업경영은 수익성 중심으로 바뀌어질 것이 명확해졌다. 이는
기업구조조정과정에서 강요된 것이기도 하지만 기업 스스로를 위한 보수적인
선택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98년중 기업신규투자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불안과 신용경색에 따라 투자 자금조달이 극히
어려웠던 기업외부환경이 신규시설투자를 가로막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른바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면서 성장지향적 가치관이 캐시플로 위주의 안정지향
적 성향으로 탈바꿈한 결과이기도 하다. 회사채발행 등으로 자금사정이 결코
나쁘지만도 않았던 5대 그룹등의 제조업시설투자 역시 극히 부진했다는 점은
그런 측면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같은 기업경영패턴의 변화에 대한 의미부여
나 가치판단은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새로운 성장
에너지를 축적할때까지 상당기간 현상유지적인 저성장을 지속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소비위축에 따른 내수부진은 증폭된 경제불확실성의 필연적 산물이었다.
고용불안 등에 따른 심리적 위축이 소득감소속에서 저축률 증대라는 비정상
적인 상황을 엮어냈고, 그것이 일본유형의 디플레조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국면이기도 하다. 이같은 추세가 장기화할 경우 경기회복에 결정적인
짐이 될 것은 물론이지만 사회안정에도 부작용을 결과할 우려가 없지 않다.
부동산 임대업자는 차치하더라도 호황기에 은행빚으로 건물을 짓거나 매입
했던 중산층의 몰락은 디플레국면이 장기화할 경우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IMF체제이후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가계의 비중이 현저히 줄었다는
등의 의식조사결과 등은 98년이 배태한 사회문제의 일단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리해고제의 도입에 따라 광범위하게 단행된 명예퇴직 등 고용조정이
기존의 "평생 직장"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게될 것이란 점은 이미 예고됐던
일이지만, 어쨌든 98년의 사회적 파장은 우려할 대목이 적지않다.
98년 경제정책은 달라진 경제여건에 맞게 구조조정작업을 벌이는데 그
초점이 맞춰졌다. 당연하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적잖은 딜레마를 수반하는 양상이기도 했다. 정부간여와 개입이 줄어드는
시장경제로 가야한다는 당위, 구조조정이 정부주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간 부조화가 두드러진 꼴이었다고 지적할 수 있다. 관치금융이 오늘의
금융부실을 결과한 근본적인 원인이었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금융
구조조정의 과정과 결과가 은행에 대한 정부영향력을 더욱 강화하는 꼴이 된
것은 그 단적인 사례다. 5대 그룹 빅딜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금융구조조정 등이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고 보면 관주도 구조
조정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역할의 축소와 진정한 시장
경제를 위한 정비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해결이라기 보다는 또다른
차원의 숙제를 남겼다고 하겠다.
외환시장이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는 점은 지난 1년간 경제운용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IMF체제에 들어간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개혁에서 앞서가고 있고
적응력도 뛰어나다는게 대외적인 평가고, 그 결과 국제적인 신용평가기관 및
금융기관들의 반응도 호전되고 있다. IMF체제가 시작된 작년 12월3일 60억달
러를 밑돌았던 가용외환보유고가 8배로 늘어났고, 단기외채의 비중도 20%로
1년전에 비해 반감됐다는 점에서 외환위기는 일단 벗어났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외채가 GDP(국내총생산)의 50%를 웃돌고 1년간 지급해야할
외채이자만도 GDP의 4%에 달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요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쪽은 실물경제, 특히 제조업쪽이다. 가동률이 여전히 60%
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수요부진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제조업체가 쓰러져 유기적인 산업네트워크 그 자체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빠른 시일안에 과거처럼 80%대 가동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21세기에 대비한 생산기반확충과 정비가 절실하다. 투자가 기업의욕의
종속함수라고 본다면 결국 기업인들의 의욕을 되살리는 방안이 시급하다는
얘기가 된다. 빅딜 등 구조조정과정에서 불거진 기업과 정부간 마찰도 그런
점에서 좀더 신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선단식경영의 폐해를
시정할 구조조정도 긴요한 과제지만 기업투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참으로
시급한 여건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외환위기수습 등으로 98년 경제가 그런대로 성과가 있었던데는 사회 각
계층이 위기의식을 함께 했기 때문이지만, 각 경제주체간 신뢰성 확보, 특히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