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통일의 재음미 >>

고일동 <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

복잡한 남북한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독일의 경험은 항상 귀중한
준거가 된다.

하지만 혹시 독일의 상황을 한반도 환경에 단순 적용하려던 우리의
성급함이 판단착오를 초래한 점은 없었는지 혹은 중요한 정책적 함의를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실제 통일직 후 독일인들이 우리에게 던져준 첫번째 충고는 통일이란
어느 순간 갑자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일통일과 같은 시기에 급속히 개선되기 시작한 남북관계는 우리에게도
조만간 통일이 예고없이 다가올지 모른다는 기대 섞인 우려를 자아내게
했다.

또 엄청난 통일비용을 걱정하면서 독일의 실수를 거울삼아 통일에 대비한
여러 가지 정책적 대안의 강구에 관심이 집중된 적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문제로 인한 좌절,핵문제 타결 이후에도 남북한간의
경색국면이 지속되면서 우리의 현실인식도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한반도의 환경이 독일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또한 최근 심각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연명되고 있는 북한이
동독과 비교될 수 없듯이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맞은 우리의
경제역량이 아직은 서독에 비교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게 됐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독일의 경험은 통일을 전후한 상황이 아니라 50년의
독일분단사 전체를 조망하는 보다 포괄적인 시각이다.

그리고 분단지역간에 다원적인, 그리고 부단한 교류를 통한 동질성
회복없이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 정부도 불가능한 통일논의보다는 우선 가능한 분야부터
북한과의 교류를 최대한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힌 후 일관되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앞으로도 일관되게 추진되기에는 우리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북한에 대한 시각과 인식의 공유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동해안에 관광선이 항해할 때 서해안과 남해안에는 간첩선이 출몰하는
이중적 상황에서 모든 국민들이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북정책을 둘러싼 우리 내부의 심각한 시각차이는 다원화된
민주주의의 징표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느낌이다.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이 통일의 바탕이 되었다는 점을 들어 독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69년 출범한 사민당 브란트 정권의 적극적인 동방정책에
모아져 왔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교훈은 60년대 중반 이후 동독문제와 함께 급격히
분출하는 서독 사회의 내부적 갈등을 극복해 낸 독일인들의 문제해결
능력에서 찾아야 한다.

66년 기민당과 사민당간 대연정이 이뤄지면서 국가적 과제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었으며 이러한 내부적 합의가 선행되었기 때문에
브란트 정권이 보다 자신있게 대 동독 정책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민족 내부적 관계의 발전은 강자인 서독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에 의해서 주도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도 남한의 주도적인 노력이 아니고서는 남북한
관계의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문제의 효율적 관리에 대북전략이나 주변국과의 공조체제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지만 대외정책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결국 우리 내부적으로 의견을 수렴, 결집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아닌가
생각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