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메가트랜드] 100세 노학자의 세기말 증언..최태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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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이제까지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천된 적이 없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나라를 바로 세울수 있습니다"
20세기가 시작되는 해에 세상에 태어나 한세기를 살아온 최태영 박사는
한국의 한세기를 이렇게 평가한다.
잘못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국의 장래도 밝을 것 이라는게
그의 지론이다.
1백세를 맞은 그이지만 민주주의와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한 열정은 청년
이상으로 뜨겁다.
법학자이면서 역사학자로서 인생의 황환기를 불태우고 있는 그는 전철역
몇정거장은 걸어다닐 정도로 건강했으나 다리가 안 좋아 한달전부터 집에서
요양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첨 한번 안보고 지난 일들을 정확히 회고할 정도로 기억력이
또렷하다.
특히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면서
열변을 토한다.
책으로 가득찬 인천 율목동 자택에서 최 박사를 만나봤다.
< 대담 = 김형수 산업2부장 >
-----------------------------------------------------------------------
-지난 1백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세기였습니다.
국치와 광복, 전쟁과 혁명으로 얼룩졌습니다.
한국인들이 기적적인 성장으로 배고픔을 면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먼저 지난 1백년을 평가해주시지요.
"우리나라는 잿더미속에서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이룩해
냈습니다.
누구도 한국이 합방과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거뜬히 재기하리라고
생각하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냈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바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는 3권이 분리돼 있고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독재정권이 들어서 국민들이 질곡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민주주의는 실천돼온 것이 아닌가요.
"내가 얘기하는 것은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법이 있고 권력이 분립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1인에 의한 통치가 많았습니다.
견제기능이 없었어요.
이것은 올바른 의미에서의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현 정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좀 두고 봐야 평가가 가능한 것이고 역사를 돌이켜 볼때 잘못됐다는
얘기지요"
-1백년 역사중 한국에게 가장 큰 시련이었던 것을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여러가지가 있지만 아무래도 일본의 식민 통치겠지요.
그 시절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수탈의 시대였습니다.
경제적 기반은 거의 다 일본인들의 손에 넘어갔고 우리의 문화까지 상실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를 시정하고 새롭게 출발할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해방은 좋은 기회를 가져다 줬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이승만 정부가 모두 망쳐놨습니다.
수치스러운 식민통치기간을 마감하고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새정부가
들어서야 했지만 일본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일제시대에 득세했던 세력들이 여전히 독립정부에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보는 눈도 식민사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니 그 후의 역사야 불을 보듯 뻔한겁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시절부터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결과 외형면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국으로 성장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경제성장이 별로 상관관계가 없는것 아닐까요.
"성장만 중요한게 아닙니다.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분배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얘깁니다.
성장만 추구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민족의 결집력이 떨어지고 결국 성장잠재력이 약해지며 민주주의 발전에도
걸림돌이 되지요"
-최근 한국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당파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해야 합니다.
역대정권을 볼때 우리는 능력이나 성품에 관계없이 자파 사람만 우대해온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래선 안됩니다.
물가관리에 능한 사람,외채관리를 잘하는 사람등 각방면의 인재를 두루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합니다.
또 더 급하고 덜 급한 문제를 잘 가려서 정책을 세워야 하지요.
일의 선후가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정책 역시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제 곧 새로운 세기가 시작됩니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한국의 역사는 상당부분 왜곡돼 있습니다.
역사왜곡에는 일본의 책임이 크지만 국내의 일부 역사학자들의 책임도
있어요.
역사가 바로 세워지면 나라도 제대로 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입니다" -법학자이면서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어떤 계기 때문인지요.
"본래 역사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연구를 시작했지요.
본격적인 연구는 75년부터 시작했지만 그전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었어요.
특히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법철학을 전공하면서 뿌리를 찾다보니 단군
에까지 이르게 되고 단군조선이 신화가 아닌 실제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부터입니다.
건국후 법전편찬위원과 고시위원으로 위촉되면서 국사를 고시과목에 편입
시킨 것도 내가 주장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수십년동안 준비를 거쳐 76세때부터 역사연구를 제대로 시작한
셈입니다"
-한국 역사중 어떤 부분이 왜곡됐거나 잘못 알려져 있습니까.
"많은 부분이 있지요.
한번 예를 들어봅시다.
일본인이 한국사람 이름을 도용해 지은 책으로 "추한 한국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일본이 통치하기 전까지 한국에 학교가 하나도 없는데 일본인
이 들어와서 세웠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합방전 한국에는 학교가 3천개나 있었어요.
내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이준 김구 안창호 선생같은 선각자들이 리에 한개씩 학교를 세우기로 목
표를 세우고 실천했지요"
-한.일 관계사중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일본 황실이 백제후손이라는 점입니다.
이 역시 움직일수 없는 증거를 갖고 있어요.
비화를 하나 소개하지요.
15년전 아들(의학박사 최원철씨)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지요.
절친한 사람으로부터 일본인을 소개받아 만났어요.
그 일본인이 보관해온 역사책에 일본 황실이 백제에서 건너왔다는 내용이
들어있더란 말입니다"
-학계에선 아직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단순히 사실의 교정이 아닙니다.
인식의 문제입니다.
출발점부터 바른 인식을 가져야만 하는 겁니다.
기초가 부실한 건물은 무너지게 돼있습니다.
과거를 정확히 알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그것이
중요합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한국의 미래를 그려나갈 틀이 될 것이고 올바른 역사
이해는 그 토대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 정리=김낙훈 기자 nhk@ >
[ 원로법학자 최태영 박사 프로필 ]
<>생년월일 =1900년 3월 28일
<>출생지=황해도 은율
<>자택=인천 중구 율목동
<>학력 및 경력
경신학교(현 경신중.고교)(1913~1917)
일본 메이지법대(1918~1924)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법과교수(1925~1945)겸 경신학교 교장(1939~1946)
중앙대 명예법학박사 부산대 인문대학장(1946)
서울대 법대학장(1947~1949)
중앙대 법문학부장, 초대법정대학장(1948~1957)
청주대 대학원장(1958~1962)
청주대학장(1966~1969)
한국상사법학회 회장(1959~1972)
한국법학교수회 초대회장(1966)
명예회장(1968)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해외소재 한국학 연구자료조사위원(1985)
인천대 한국학연구소장(1993)
<>상훈 =학술원 저작상
<>저서 =법학개론, 민법총칙, 현행어음.수표법, 서양 법철학의 역사적 배경
(1977) 한국상고사(1990)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나라를 바로 세울수 있습니다"
20세기가 시작되는 해에 세상에 태어나 한세기를 살아온 최태영 박사는
한국의 한세기를 이렇게 평가한다.
잘못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국의 장래도 밝을 것 이라는게
그의 지론이다.
1백세를 맞은 그이지만 민주주의와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한 열정은 청년
이상으로 뜨겁다.
법학자이면서 역사학자로서 인생의 황환기를 불태우고 있는 그는 전철역
몇정거장은 걸어다닐 정도로 건강했으나 다리가 안 좋아 한달전부터 집에서
요양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첨 한번 안보고 지난 일들을 정확히 회고할 정도로 기억력이
또렷하다.
특히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면서
열변을 토한다.
책으로 가득찬 인천 율목동 자택에서 최 박사를 만나봤다.
< 대담 = 김형수 산업2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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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백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세기였습니다.
국치와 광복, 전쟁과 혁명으로 얼룩졌습니다.
한국인들이 기적적인 성장으로 배고픔을 면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먼저 지난 1백년을 평가해주시지요.
"우리나라는 잿더미속에서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이룩해
냈습니다.
누구도 한국이 합방과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거뜬히 재기하리라고
생각하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냈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바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는 3권이 분리돼 있고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독재정권이 들어서 국민들이 질곡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민주주의는 실천돼온 것이 아닌가요.
"내가 얘기하는 것은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법이 있고 권력이 분립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1인에 의한 통치가 많았습니다.
견제기능이 없었어요.
이것은 올바른 의미에서의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현 정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좀 두고 봐야 평가가 가능한 것이고 역사를 돌이켜 볼때 잘못됐다는
얘기지요"
-1백년 역사중 한국에게 가장 큰 시련이었던 것을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여러가지가 있지만 아무래도 일본의 식민 통치겠지요.
그 시절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수탈의 시대였습니다.
경제적 기반은 거의 다 일본인들의 손에 넘어갔고 우리의 문화까지 상실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를 시정하고 새롭게 출발할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해방은 좋은 기회를 가져다 줬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이승만 정부가 모두 망쳐놨습니다.
수치스러운 식민통치기간을 마감하고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새정부가
들어서야 했지만 일본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일제시대에 득세했던 세력들이 여전히 독립정부에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보는 눈도 식민사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니 그 후의 역사야 불을 보듯 뻔한겁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시절부터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결과 외형면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국으로 성장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경제성장이 별로 상관관계가 없는것 아닐까요.
"성장만 중요한게 아닙니다.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분배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얘깁니다.
성장만 추구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민족의 결집력이 떨어지고 결국 성장잠재력이 약해지며 민주주의 발전에도
걸림돌이 되지요"
-최근 한국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당파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해야 합니다.
역대정권을 볼때 우리는 능력이나 성품에 관계없이 자파 사람만 우대해온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래선 안됩니다.
물가관리에 능한 사람,외채관리를 잘하는 사람등 각방면의 인재를 두루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합니다.
또 더 급하고 덜 급한 문제를 잘 가려서 정책을 세워야 하지요.
일의 선후가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정책 역시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제 곧 새로운 세기가 시작됩니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한국의 역사는 상당부분 왜곡돼 있습니다.
역사왜곡에는 일본의 책임이 크지만 국내의 일부 역사학자들의 책임도
있어요.
역사가 바로 세워지면 나라도 제대로 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입니다" -법학자이면서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어떤 계기 때문인지요.
"본래 역사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연구를 시작했지요.
본격적인 연구는 75년부터 시작했지만 그전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었어요.
특히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법철학을 전공하면서 뿌리를 찾다보니 단군
에까지 이르게 되고 단군조선이 신화가 아닌 실제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부터입니다.
건국후 법전편찬위원과 고시위원으로 위촉되면서 국사를 고시과목에 편입
시킨 것도 내가 주장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수십년동안 준비를 거쳐 76세때부터 역사연구를 제대로 시작한
셈입니다"
-한국 역사중 어떤 부분이 왜곡됐거나 잘못 알려져 있습니까.
"많은 부분이 있지요.
한번 예를 들어봅시다.
일본인이 한국사람 이름을 도용해 지은 책으로 "추한 한국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일본이 통치하기 전까지 한국에 학교가 하나도 없는데 일본인
이 들어와서 세웠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합방전 한국에는 학교가 3천개나 있었어요.
내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이준 김구 안창호 선생같은 선각자들이 리에 한개씩 학교를 세우기로 목
표를 세우고 실천했지요"
-한.일 관계사중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일본 황실이 백제후손이라는 점입니다.
이 역시 움직일수 없는 증거를 갖고 있어요.
비화를 하나 소개하지요.
15년전 아들(의학박사 최원철씨)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지요.
절친한 사람으로부터 일본인을 소개받아 만났어요.
그 일본인이 보관해온 역사책에 일본 황실이 백제에서 건너왔다는 내용이
들어있더란 말입니다"
-학계에선 아직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단순히 사실의 교정이 아닙니다.
인식의 문제입니다.
출발점부터 바른 인식을 가져야만 하는 겁니다.
기초가 부실한 건물은 무너지게 돼있습니다.
과거를 정확히 알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그것이
중요합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한국의 미래를 그려나갈 틀이 될 것이고 올바른 역사
이해는 그 토대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 정리=김낙훈 기자 nhk@ >
[ 원로법학자 최태영 박사 프로필 ]
<>생년월일 =1900년 3월 28일
<>출생지=황해도 은율
<>자택=인천 중구 율목동
<>학력 및 경력
경신학교(현 경신중.고교)(1913~1917)
일본 메이지법대(1918~1924)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법과교수(1925~1945)겸 경신학교 교장(1939~1946)
중앙대 명예법학박사 부산대 인문대학장(1946)
서울대 법대학장(1947~1949)
중앙대 법문학부장, 초대법정대학장(1948~1957)
청주대 대학원장(1958~1962)
청주대학장(1966~1969)
한국상사법학회 회장(1959~1972)
한국법학교수회 초대회장(1966)
명예회장(1968)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해외소재 한국학 연구자료조사위원(1985)
인천대 한국학연구소장(1993)
<>상훈 =학술원 저작상
<>저서 =법학개론, 민법총칙, 현행어음.수표법, 서양 법철학의 역사적 배경
(1977) 한국상고사(1990)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