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1000년 준비] (1) 패러다임 시프트 <2> '자본 -> 뇌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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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에서 뇌본으로 ]
경제권력의 바통이 물질에서 정신으로 옮겨가고 있다.
자연에 존재하거나 인간이 만들어낸 재화가 아니라 인간의 두뇌에서 부가
창조된다.
바로 뇌본시대의 도래다.
상품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에 값이 매겨지는 지가사회로의 이행이다.
뇌본사회를 그 이전의 시대와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가치창출의 근원이
달라졌다는데 있다.
인류역사 초기의 경제권은 토지에서 나왔다.
권력의 확대여부를 결정하는 변수는 토양과 기후 물이었다.
노동력도 자연의 일부분이었다.
소작농과 농노를 거느린 지본가가 권력을 행사했다.
수십세기 후에 산업혁명과 기계혁명이 일어나면서 한차례의 변혁이 있었다.
권력의 주체가 기계와 돈과 상술을 거머쥔 자본가에게로 옮겨 갔다.
서양의 경우 중상주의가 등장한 15세기 후반, 동양은 19세기 후반이 이때다.
자본의 시대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으로 분화되면서 20세기말까지 그
수명을 이어오고 있다.
수세기만에 인류는 또한번의 혁명을 맞고 있다.
두뇌혁명이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으면서 생활과 사고의 틀을 개변시키는 대변혁이다.
두뇌의 시대를 그 이전의 사회와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인간 자신이
생산의 주체이자 수단이 됐다는데 있다.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권력이동"에서 이 상황을 "사실상의 생산수단을
소유한 새로운 형태의 피고용자가 출현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여기서 "사실상의 생산수단"이란 도구나 기계류 따위가 아니다.
인간이 지닌 "지식과 아이디어"를 말한다.
이것이 힘의 근원이다.
토플러는 "새로운 생산수단이 피고용자들의 머리 속에서 딸깍딸깍 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한다.
고용주와 피고용자,생산수단을 겸한 이 새로운 경제주체가 바로 뇌본가다.
경영학계의 구루(guru:대스승)라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 교수는 생산요소의
변화로 설명했다.
그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토지 노동 자본과 같은 전통적 생산요소
의 효용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고 갈파했다.
앞으로는 정보와 지식을 전략적으로 생성.획득.분배.적용하는 능력이 힘의
유일한 근원이 된다는게 그의 단언이다.
농경사회가 지식을 도구에, 산업사회가 지식을 기계에 이용했다면 새로운
시대는 지식을 지식에 활용하는 세상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뇌본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한마디로 축약하면 사회체계와 가치관, 산업구조가 인간과 과학의 상호
작용과 정보의 흐름을 촉진하는데 기반을 둔 세상이다.
인간의 창의력을 북돋우는 방향으로 틀이 짜여진 사회다.
그 복잡계의 세계는 이 순간에도 변화중이지만 미국의 모델을 들어 어렴풋
이나마 엿볼 수 있다.
지난 70년대 중반이후 "미국의 몰락"을 외치는 소리가 높았었다.
대규모 제철소와 조선소 정유공장은 물론 반도체산업까지 연이어 일본과
한국 등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더이상 첨단산업의 메카가 아니었다.
쌍둥이 적자는 게으른 엉클 샘을 더욱 추하게 만들었다.
일본의 세계제패는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90년대 들면서 인플레 없는 최장기 호황이라는 "신경제"를
구가하며 세계경제의 전면에 복귀했다.
곧 지배자가 될 것 같았던 일본은 위기직전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따라가지 못한 결과다.
미국의 자본가들은 일찌기 상품경쟁에서의 한계를 인식했다.
무게중심을 자본집약적에서 정신집약적 산업으로 옮겼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이행이었다.
일본이 명함만한 계산기와 손바닥 크기의 카메라를 만드는 동안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가 성장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인간-과학-정보-문화가 어우러진 미래사회를 만들려는 시도가
진행됐다.
기존 상품의 "개선"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였다.
장래성이 의문시됐지만 모험자본(벤처캐피탈)이 뒷받침했다.
그 저간에서는 미래형 교육을 받은 창조형 인간들이 길러지고 있었다.
자율성이 충만한 사회체계는 그 자체로도 세계도처의 기발한 인재들을 불러
들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창의적인 인간과 기업 사회가 가고 싶은 곳으로 흘러
가게 물꼬를 터주는 기능만 했다.
"산업정책"이란 단어조차 없었다.
패러다임 모형에서의 반면교사가 일본이다.
긴 설명이 필요없는 "규제의 섬나라"는 여전히 상품경제로 위기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세계최대를 자랑하는 일본의 거대한 무역흑자와 3천억달러에 달하는
미국국채는 위기에선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물질 패러다임의 한계다.
뇌본사회는 가능성의 사회다.
확률 "0"의 상황에서도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두뇌를 가진 인간의 존재 그 자체로 설비와 공장과 경영자가 확보된다.
만들기만 하면 수요는 무한대다.
한계가 없는 시장이다.
후발주자라도 "창의력"만 있다면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시장이다.
[ 특별취재팀 : 정만호(국제부장.팀장) 육동인(사회2부) 임혁(국제부)
이의철(정치부) 조주현(국제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4일자 ).
경제권력의 바통이 물질에서 정신으로 옮겨가고 있다.
자연에 존재하거나 인간이 만들어낸 재화가 아니라 인간의 두뇌에서 부가
창조된다.
바로 뇌본시대의 도래다.
상품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에 값이 매겨지는 지가사회로의 이행이다.
뇌본사회를 그 이전의 시대와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가치창출의 근원이
달라졌다는데 있다.
인류역사 초기의 경제권은 토지에서 나왔다.
권력의 확대여부를 결정하는 변수는 토양과 기후 물이었다.
노동력도 자연의 일부분이었다.
소작농과 농노를 거느린 지본가가 권력을 행사했다.
수십세기 후에 산업혁명과 기계혁명이 일어나면서 한차례의 변혁이 있었다.
권력의 주체가 기계와 돈과 상술을 거머쥔 자본가에게로 옮겨 갔다.
서양의 경우 중상주의가 등장한 15세기 후반, 동양은 19세기 후반이 이때다.
자본의 시대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으로 분화되면서 20세기말까지 그
수명을 이어오고 있다.
수세기만에 인류는 또한번의 혁명을 맞고 있다.
두뇌혁명이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으면서 생활과 사고의 틀을 개변시키는 대변혁이다.
두뇌의 시대를 그 이전의 사회와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인간 자신이
생산의 주체이자 수단이 됐다는데 있다.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권력이동"에서 이 상황을 "사실상의 생산수단을
소유한 새로운 형태의 피고용자가 출현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여기서 "사실상의 생산수단"이란 도구나 기계류 따위가 아니다.
인간이 지닌 "지식과 아이디어"를 말한다.
이것이 힘의 근원이다.
토플러는 "새로운 생산수단이 피고용자들의 머리 속에서 딸깍딸깍 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한다.
고용주와 피고용자,생산수단을 겸한 이 새로운 경제주체가 바로 뇌본가다.
경영학계의 구루(guru:대스승)라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 교수는 생산요소의
변화로 설명했다.
그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토지 노동 자본과 같은 전통적 생산요소
의 효용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고 갈파했다.
앞으로는 정보와 지식을 전략적으로 생성.획득.분배.적용하는 능력이 힘의
유일한 근원이 된다는게 그의 단언이다.
농경사회가 지식을 도구에, 산업사회가 지식을 기계에 이용했다면 새로운
시대는 지식을 지식에 활용하는 세상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뇌본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한마디로 축약하면 사회체계와 가치관, 산업구조가 인간과 과학의 상호
작용과 정보의 흐름을 촉진하는데 기반을 둔 세상이다.
인간의 창의력을 북돋우는 방향으로 틀이 짜여진 사회다.
그 복잡계의 세계는 이 순간에도 변화중이지만 미국의 모델을 들어 어렴풋
이나마 엿볼 수 있다.
지난 70년대 중반이후 "미국의 몰락"을 외치는 소리가 높았었다.
대규모 제철소와 조선소 정유공장은 물론 반도체산업까지 연이어 일본과
한국 등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더이상 첨단산업의 메카가 아니었다.
쌍둥이 적자는 게으른 엉클 샘을 더욱 추하게 만들었다.
일본의 세계제패는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90년대 들면서 인플레 없는 최장기 호황이라는 "신경제"를
구가하며 세계경제의 전면에 복귀했다.
곧 지배자가 될 것 같았던 일본은 위기직전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따라가지 못한 결과다.
미국의 자본가들은 일찌기 상품경쟁에서의 한계를 인식했다.
무게중심을 자본집약적에서 정신집약적 산업으로 옮겼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이행이었다.
일본이 명함만한 계산기와 손바닥 크기의 카메라를 만드는 동안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가 성장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인간-과학-정보-문화가 어우러진 미래사회를 만들려는 시도가
진행됐다.
기존 상품의 "개선"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였다.
장래성이 의문시됐지만 모험자본(벤처캐피탈)이 뒷받침했다.
그 저간에서는 미래형 교육을 받은 창조형 인간들이 길러지고 있었다.
자율성이 충만한 사회체계는 그 자체로도 세계도처의 기발한 인재들을 불러
들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창의적인 인간과 기업 사회가 가고 싶은 곳으로 흘러
가게 물꼬를 터주는 기능만 했다.
"산업정책"이란 단어조차 없었다.
패러다임 모형에서의 반면교사가 일본이다.
긴 설명이 필요없는 "규제의 섬나라"는 여전히 상품경제로 위기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세계최대를 자랑하는 일본의 거대한 무역흑자와 3천억달러에 달하는
미국국채는 위기에선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물질 패러다임의 한계다.
뇌본사회는 가능성의 사회다.
확률 "0"의 상황에서도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두뇌를 가진 인간의 존재 그 자체로 설비와 공장과 경영자가 확보된다.
만들기만 하면 수요는 무한대다.
한계가 없는 시장이다.
후발주자라도 "창의력"만 있다면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시장이다.
[ 특별취재팀 : 정만호(국제부장.팀장) 육동인(사회2부) 임혁(국제부)
이의철(정치부) 조주현(국제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