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는 정말 막막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를 겁니다. 무엇보
다 직원들이 자신감을 가진 것이 큰 힘입니다"

"노루표 페인트"로 잘 알려진 대한페인트 잉크(주)의 한영재(44) 사장.

지난해 그는 창사 이래 최대의 경영난으로 가족과도 같은 직원 2백여명을
정리해고하는 아픔을 맛봐야했다.

그러나 노조와 근로자들의 눈물겨운 헌신으로 회생에 성공, 이들중 90여명
을 다시 복귀시키는 감격도 누렸다.

어쩌면 올해는 나머지 직원들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한사장은 지금 그런 꿈에 부풀어 있다.

해방되던 해인 지난 45년 창립한 이 회사는 97년에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경기침체와 외상매출금이 회수부진으로 자금사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매출액의 15%나 차지했던 기아자동차의 부도로 조업중단 사태
까지 일어났다.

98년 1월에는 공장가동률이 50%까지 떨어졌고, 적자폭은 눈덩이처럼 불어났
다.

결국 2월 2백여명을 정리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이 이 회사를 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경영의
목표"라고 말해왔던 한사장으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그 때처럼 힘든 적은 없었습니다. 차라리 사장실에 몰려와 항의라도 하면
마음이 편했을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회사가 잘되기를 빈다"며 격려하더군
요"

한사장은 이들에 대해 회사사정이 좋아지는대로 "복귀"를 약속했다.

그리고 회사대리점 운영권을 주는 등 최대한의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임원진이 나서 30여명을 취업시키기도했다.

눈물로 동료의 퇴출을 지켜본 직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들을 살리는 것은 남아 있는 자의 몫이라며 헌신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각종 복리후생비를 축소하고 성과급 반납,임금인상 동결 등을 선언했다.

30분 먼저 출근해 업무를 시작하는"일 더하기 운동"으로 생산성 향상에
앞장섰다.

드디어 하반기부터 매출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1월에 6천여톤에 불과하던 생산량이 11월에는 1만1천톤으로 급증했다.

이 기간중 1인당 생산성은 무려 70%나 증가했다.

결국 90여명이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한성수(42) 노조위원장은 "회사측은 매월 경영상태를 공개하는 등 노사
신뢰구축에 힘써 왔다"며 "경영진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정리해고에
동의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대한페인트.잉크의 올해 순익목표는 80억원.

98년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만큼 자신감이 충만해있다.

"올해는 외형보다는 내실에 충실할 겁니다. 회사를 살린 근로자들에게는
임금인상으로 보답을 해야죠"(한사장)

"올해는 신바람나게 일하기위한 전진운동을 전개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회사 복귀를 바라는 50여명의 희망도 실현시킬겁니다"(한위원장).

협력적 노사관계로 회사를 정상궤도로 올려놓은 두 사람의 새해 포부다.

< 김태완 기자 tw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