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뉴욕까지 지구촌을 한바퀴 돈 유로의 데뷔무대는 기립박수속
에서 막을 내렸다.

유로의 장미빛 장래를 그려볼수 있는 하루였다.

4일 오전 5시(한국시간 오전 3시), 먼동이 틀 무렵 호주 시드니 금융가의
시티뱅크 타워건물 12층.

거래가 시작되자 마자 함성이 터졌다.

"예상대로다" 그 순간 환율전광판은 유로당 1.1747달러, 133.20엔이라는
빨간 숫자가 선명했다.

유로출범 직전에 설정한 기준환율(유로당 1.1667달러와 132.80엔)보다 높은
시세다.

국제환율 체제가 "유로강세-달러약세-엔중립"의 3각구도로 새출발하는
순간이었다.

"강한 출발이다. 거래량은 많지 않았지만 유로의 기축통화 가능성이 확인된
신고식이었다"는게 딜러와 전문가들의 일치된 진단이었다.

시드니에서 유로의 데뷔광경을 목격한 세계금융계의 이목은 곧 도쿄시장
으로 향했다.

도쿄시장의 환율은 더 중요하다.

런던 뉴욕과 함께 세계 3대 외환시장인 까닭이다.

오전 9시(이하 한국시간), 유로 거래의 첫 벨이 울렸다.

유로당 1.1758달러, 1백32.58엔.

유로화의 가치는 달러에 대해선 시드니보다 더 올랐다.

엔에 대해서는 약간 떨어졌다.

이만하면 지난 50여년간 독보적인 기축통화 권좌를 누려온 달러와 대적
하기에 충분한 면모였다.

유로 강세가 지속되자 급기야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당 1.175달러에서
시장개입에 들어갔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ECB가 유로의 지나친 강세를 막기 위해 유로매각.달러와 엔매입 주문을
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개입 소문에도 불구하고 유로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시세는 기록을 고쳤다.

결국 도쿄시장에선 유로당 1.1882달러, 1백34.84엔으로 마감됐다.

욱일승천, 이 말밖에는 적합한 말이 없었다.

그 상황에서 달러에 딱 어울리는 용어는 "급전직하" 뿐이었다.

달러약세는 비단 유로에 대해서만이 아니었다.

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였다.

개장가는 달러당 112.78엔, 작년 12월30일 도쿄시장의 마지막 시세였던
달러당 115.20엔보다 2.42엔이나 떨어졌다.

유로 데뷔의 세력에 눌린 맥없는 모습이었다.

도쿄미쓰비시은행의 외환거래 부책임자 미야자키 마코토는 "유로가 예상
보다 빨리 국제통화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엔은 유러에는 보합, 달러에는 강세를 유지함으로써 일본의 기대처럼
"캐스팅 보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서울시장에서도 유로강세는 돋보였다.

오전 11시30분, 유로는 1.1830달러로 상승세를 멈추지 않았다.

원화에 대해서도 유로당 1천4백14.0원(전날 고시환율 1천3백95.3)을 기록
했다.

유로 강세는 홍콩시장으로도 이어졌다.

오후 2시15분 유로는 1.1845달러로 약 4시간전의 개장가 1.1748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싱가포르 콸라룸푸르 방콕시장에서도 현지 통화들에 대해 오름세 일색
이었다.

오후 4시30분경, 아시아 외환딜러들의 눈길은 유럽시장으로 훌쩍 넘어갔다.

드디어 유로의 본 무대가 열린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파리 그리고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런던시장이 1시간씩의
시차를 두고 잇달아 개장됐다.

시장마다 환율전광판에는 유로의 강세지속을 알리는 숫자들로 가득했다.

대서양 건너편 뉴욕시장에서도 유로는 강세로 출발하며 달러를 계속 위협
했다.

< 이정훈 기자 lee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