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기관 제소까지 불사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던 LG가 6일
갑자기 지분 전체를 현대에 넘기기로 한 배경에 대해 재계의 관심이 집중
되고 있다.

LG는 그 이유로 국내 전체 사업구조조정에 반도체 문제가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는 대승적인 판단을 들었다.

그러나 주류를 이루는 해석은 LG가 "예상대로" 정부의 뜻을 그대로 수용
했다는 것이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권이 "작심"을 한 상태에서 아무리 5대그룹이라도
버틸 방법이 없었을 것이란 현실론이다.

대출회수라는 2차 금융제재를 당해 계열사 전체가 자금난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구본무 회장이 "결심"했다는 분석인 것이다.

LG가 상황 악화를 대비해 "실리 노선"으로 급선회했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이 해석은 소위 보상빅딜과 연계돼 있다.

대세가 이왕 기울어진 만큼 정부와의 관계를 원만히 하면서 반도체 못지
않은 사업 기회를 잡는 차선책을 LG가 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LG가 당초 합의인 7대 3의 비율이 아니라 지분 전체를 현대에
넘기겠다고 하자 "정말 뭔가 받기는 받은 모양"이라는 말을 하는 재계
인사가 많았다.

재계에선 과연 LG가 정부나 현대로부터 무엇을 받았는지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LG 왜 갑자기 입장 바꿨나 =재계 관계자들은 LG가 현대가 요구한 수준
이상을 내놓기로 한 것은 LG가 겪고 있는 압박이 외부에서 생각하는 이상
이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1차 금융제재조치였던 신규여신 중단만 해도 그렇다.

LG반도체는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은행권의 여신중단은 그 자체 보다 타 금융권에 대한 영향이 더
크다.

부실채권 발생을 우려한 제2 제3 금융권이 대출 회수에 나설 경우 LG 그룹
전체의 자금줄이 막힐 수 밖에 없다.

유상 증자를 할 수 있다지만 이것도 계열사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룹을 책임지는 구본무 회장으로선 읍참마속의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반도체 통합지연이 국가신인도 제고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여론이 확산된 것도 LG엔 부담으로 작용했다.

미국 신용평가 회사인 무디스는 5일(현지시간) 밤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합병이 지연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한다면서 현대전자 미국 유진공장(HSA)에
대한 "부정적 관찰대상" 지위를 연장한다고 밝혔다.

안팎에서 가해지는 유형무형의 압력에 LG가 "모험"을 걸 명분을 잃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보상빅딜 있나 없나 =LG가 정부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실속을 챙겼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조속히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려는 정부와 "억울하게" 반도체를 포기해야
하는 LG의 계산이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다.

정부가 현대에 "LG가 포기한다고 하니..." 하는 식으로 모종의 양보를
종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의 미래가치를 중시해온 LG가 단지 투자비를 뽑을
생각으로 반도체를 넘기기로 했을리가 없다"며 "구 회장이 그룹 전체에
도움이 되는 뭔가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LG가 정보통신쪽에서 실리를 챙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LG가 PCS(개인휴대통신)사업 진출 당시 정부와 약속했던 "데이콤 지분 5%
이하"라는 옵션을 정부가 풀어줬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또 현대가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온세통신 지분을 LG에 넘겨주기로
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대가 석유화학이나 정유부문을 LG에 양보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해석은 최근 5대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독주한다"는 여론에
부담을 느껴온 현대로서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는게 재계의 중론이다.

그러나 두 회사는 보상빅딜 가능성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
했다.

<> 정부 압력은 없었나 =정부는 지난해 12월 25일 아서디리틀(ADL)이
반도체 통합 법인 주체로 현대가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낸 이후 LG에 합의
이행을 촉구할 뿐 표면적으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왔다.

다만 주채권은행을 통해 LG에 대한 신규여신중단이라는 족쇄만 채워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LG는 경제부처와 정부 고위층으로부터 지속적인 "압력"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올 들어선 대외신인도 문제와 관련해 LG가 걸림돌이 돼서는 곤란
하다는 지적을 자주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