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이 기자실에 나타났다.

이 장관은 잠시 머뭇거렸다.

이내 입을 열었다.

"공석중인 예금보험공사 전무에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씨를 내정했다"고.

기자실이 술렁거렸다.

곧이어 질문이 쏟아졌다.

누가 추천했는지, 적임으로 생각하는지 등등.

이 장관은 답했다.

"30년동안 은행에 몸담아 업무처리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리곤 서둘러 자리를 떴다.

7일 신임 이 전무가 공식 임명되던 날 이침 신문사 편집국.

전 은행 임원이었다는 독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과연 이씨가 예금보험공사 전무로 적임이냐"는 요지의 전화였다.

예금보험공사는 국민의 세금으로 부실 금융기관의 예금자를 보호하는 게
주업무다.

지난해 금융구조조정으로 문을 닫은 은행과 종금사를 대신해 예금을 지급
하는 등의 일을 한다.

말하자면 구조조정을 위한 핵심 기관인 셈이다.

그런 기관의 임원으로 시중은행 임원 출신이 갈수 있느냐는 게 그 독자의
의문이었다.

물론 예금보험공사 전무라고 해서 특별한 자격요건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전무는 수십년간 은행업무를 해왔다.

동화은행에서 이사대우까지 지낸 경력도 있다.

자격요건은 충분하다.

그렇지만 부실경영으로 퇴출당한 은행의 임원이었던 사람이 퇴출금융기관의
뒤처리를 맡는 기관의 전무가 된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게 독자의
지적이다.

독자가 전화한 이유는 또 있었다.

이씨가 자격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가 친인척이라는 점은 오히려 "핸디캡"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친인척이나 측근들이 정치에
개입해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엄중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TV를 통한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전직 대통령들의 사례를 거울삼아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들의 친인척이 끼쳤던 해악을 너무나 잘 알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장관은 이번 인사에 대해 "잘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일개 산하기관 임원 인사에 대해 재경부장관이 직접 배경 설명을 한
것도 그렇지만 기자들에게 이해를 당부한 것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친인척이라도 자격요건만 갖추면 그것으로 충분할텐데 말이다.

< 김준현 경제부 기자 kim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