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ADVERTISEMENT

    [99년엔] 황태랑 <현대문학/대한교과서 대표>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대한교과서와 현대문학사 대표인 황태랑(56)사장은 요즘 1인3역으로
    눈코뜰새 없는 일정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정교과서를 인수한 뒤 대한교과서의 성남 공장과
    국정교과서가 있는 조치원으로 번갈아가며 출퇴근한다.

    본사와 현대문학사가 있는 서울에도 틈틈이 들러 현장을 점검한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열정으로 "3각 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그는 요즘 미래형 출판보국의 밑그림 그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21세기에는 문화산업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보고 문화기반의 핵심인
    출판산업 경쟁력 제고에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멀티미디어시대를 맞아 전자출판 비중을 높이고 영상매체 사업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인성발달을 돕는 학습자료 개발을 앞당기면서 교재.교구분야 진출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반세기 역사의 대한교과서는 우리나라 출판산업을 옹골차게 이끌어 온
    "등뼈"다.

    정부수립과 함께 출범해 초.중.고 교과서를 만들며 교육입국의 터전을
    넓혀왔다.

    지난해 알짜 공기업인 국정교과서 공개입찰에서 두산을 제치고 낙찰에
    성공, 국내 교과서 시장의 55%를 점유하고 있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비결은 끊임없는 자기혁신에
    있다.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철저하게 변신하고자 합니다.

    경영도 소유경영 체제에서 전문경영 체제로 바뀌고 있습니다"

    황사장은 6.25때 인쇄시설을 부산으로 옮겨 전시교재를 발행할 때에
    비하면 지금의 어려움은 오히려 자극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60년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89종 가운데 34종이 5백부 미만짜리였고 16종은 1백부도 안됐다.

    실업계 전문교과서를 출판하면서 어쩔 수 없이 떠안아야 하는 적자요인도
    많았다.

    지금은 6백18종을 펴내고 있다.

    여전히 실업.특수학교 교과서가 85%나 된다.

    "교육입국.실업교육.출판보국"의 창립이념이 아니었다면 벌써 "돈 되는
    장사"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법하지만 꿋굿하게 정도를 지키고 있다.

    그는 "현대문학"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55년 1월호로 창간된 월간 "현대문학"은 올해 1월호(통권 5백29호)까지
    44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발행된 국내 최장수 문학지.

    그동안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문인만 5백50명을 넘는다.

    "현대문학은 특정 잡지사의 매체가 아니라 사회적 공기로 자리잡은
    한국문학의 산 역사입니다.

    많은 문예지가 휴.폐간하는 중에도 흔들림없이 문학의 뿌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애정은 각별합니다"

    공채사원으로 입사해 최연소 이사를 거쳐 전문경영인에 오른 그는 우리
    출판문화의 장래가 매우 밝다고 얘기한다.

    "출판문화는 모든 산업의 근간이요 지식기반의 원천이기 때문이죠.

    연구투자와 인재양성에 더욱 힘 써야 합니다.

    또 책읽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독서교육이 현실화돼야
    합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1일자 ).

    ADVERTISEMENT

    1. 1

      진실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묻고...100년 이어온 <뉴요커>의 가치는

      잡지 문화는 이제 한물갔다. 써놓고 보니 ‘한물갔다’라는 표현이 언젠간 부활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의 뉘앙스를 살짝 품고 있는 거 같아 정정해야 할 것 같다. 잡지의 시대는 끝났다.또 ‘끝났다’라고 하니까, 잡지가 아예 안 나오는 것처럼 단정적인 표현이라 잡지 기자 출신으로 마음이 아프기는 한데, 아무튼, 잡지를 보는 사람을 찾는 게 흔하지 않을 정도로 잡지는 지난 시대의 산물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 잡지를 만든다는 건 맨땅에 헤딩하기, 혹은 빈 골문 앞에서 헛발질하는 것… 이 아니라 꽤 특별한 일이 되었다. 이 문장의 의미를 확인시켜 주는 다큐멘터리가 최근 넷플릭스에 업로드되었다. <뉴요커, 100년의 이야기>다. 『뉴요커』는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그 존재를 알 정도로 잡지의 대명사 격인 위치를 점한다. 1925년 2월 창간해 2025년 발행 100주년을 맞이한 뉴요커는 네임밸류 면에서 본거지 미국 뉴욕을 넘어 전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창간 당시 뉴요커는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 목적으로 발행됐다. 발행인 해럴드 로스가 친구들과 게임을 하던 중 이 재미를 잡지로 옮겨 재현할 수 있다면 생각한 것이 시초였다. 발행 기조에 변화가 생긴 건 미국의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였다. 미국 언론은 미국 정부의 암묵적인 규제 속에 승전 소식만 전할 뿐 그 외에는 함구했다. 이에 기자 존 허시는 히로시마 내부의 상황을 전달하고자 현지에서 한 달간 머물며 일본인들이 원폭 투하로 겪은 피해 사례를 무려 3만 단어로 기사화했다. 뉴요커는 잡지 전체를 이 기사에 할애하며 파격적인 구성을 선보였다. 잡지는 발행과 함께 매진되었고 과학자

    2. 2

      스승 김대진이 바라보는 김선욱

      “애어른 같았어요. 어릴 때부터 성숙한 음악을 했고, 내면이 깊었으며, 외골수 같은 면모를 보였죠.”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키워낸 스승 김대진은 제자와 처음 만나던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재능은 확실히 빛났으며 여러모로 독특한 아이였다고. 그래서 선생으로서 욕심이 났고, 역설적으로 자신을 ‘호랑이 선생’으로 만든 게 바로 김선욱이었다고. 그는 27년 전 그날을 회상했다.“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선욱이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에 입학하고 첫 레슨이었죠. 보통 학생들은 지망하는 교수님 이름을 적어 내는데, 1·2·3지망에 모두 김대진. 제 이름을 썼더라고요. ‘왜 그랬냐?’ 이유를 물었죠. 선생 입장에서는 듣기 좋은 소리를 기대할 거 아니에요? 근데 선욱이가 ‘다른 선생님들 이름을 몰라서요’라고 답하더군요. 당황했죠.(웃음)” 국내 최고의 피아노 스승을 만나고도 담담하던 소년. 스승 김대진은 그날부터 김선욱과 운명적인 사제 관계가 됐다. 1999년부터 이어진 스승의 가르침 끝에, 김선욱은 2006년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순수 국내파 연주자가 리즈 콩쿠르에서&nbs

    3. 3

      패션의 새 역사를 쓴 금기숙, 철사와 구슬로 꿰어 지은 순백의 시(詩)

      오랜 시간 갈망해 온 소망은 어떤 식으로든 삶에 궤적을 남긴다. 미대 진학을 원했지만 의류학을 공부하게 된 소녀가 한 올 한 올 꿰어 나간 인생도 그랬다. 옷을 캔버스 삼아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한국 패션아트 1세대 금기숙 작가의 이야기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각 국가의 선수단을 안내하는 피켓 요원이 축제의 시작을 환하게 밝혔다. 한복 위에 새하얀 눈꽃송이가 내려앉은 듯 우리 전통 의상의 구조와 선을 닮았으면서도, 요정의 옷장에서 막 꺼내입은 듯 은은하게 빛나는 자태가 전 세계인을 홀렸다. ‘눈꽃요정’으로 불리며 화제가 된 이 의상은 금기숙 작가의 작품으로, 금 작가는 한국 ‘패션아트’의 개념을 확립한 인물이다. 그는 의복을 예술로 바라본 1960년대 미국의 ‘Art to Wear’ 운동을 재해석해 한국 미술계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감꽃 목걸이를 만들던 소녀지난 12월, 작가는 40여 년의 노고가 담긴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 58건을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3억 1천만원, 혹은 그보다 더한 상당의 가치다. 기증을 기념하며 서울공예박물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