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 서울여대 교수. 경제학 >

구조조정은 시장경제제도가 정착하는 호기가 될수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인위적인 빅딜에만 매달려 있어 구조조정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단기에 조화되기 어려운 두가지 목표, 즉 환율안정과 빅딜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어 올 한국경제가 전망과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원.달러 환율이 1천2백원대를 유지할 것이라는 정부의 전망과 달리
1천1백원대로 진입하면서, 수출상담 30%이상 포기라는 보도를 보면 수출전망
도 그리 밝지 않다.

이 시점에서 정부가 강조하는 시장경제원리와 현재 경제정책의 첨예한 이슈
인 빅딜이 서로 조화될 수 있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원.달러 환율의 1천2백원대 안정이나 빅딜은 모두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외화유동성 확보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하는데는 기업간 사업교환의 한국식 표현인 빅딜이
유용하다.

경상수지흑자를 실현하는데는 환율을 적정수준으로 안정시키는 게 더 유용
하다.

그러나 각 수단의 결정요인이 서로 다르므로 두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어렵다.

현재 정부는 환율안정보다 해외직접투자 유치를 위한 빅딜에 최우선순위를
두고있는 것 같다.

해외직접투자의 결정요인은 다양하지만,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해외직접
투자를 원하는 선진국 투자가의 시각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경제구조, 즉
시장경제원리가 최대한 발휘되는 구조가 갖추어져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서구 투자가나 학자들은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하나 같이 정실자본
주의(crony capitalism)를 지적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며 그 실체는 선진국에 비해 지나친 "정경유착"이다.

따라서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하려면 이 점을 개혁해야 한다.

정부는 이 점을 간파하고,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의 병행발전"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시장경제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사유재산권과 선택의 자유
를 보장해주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감독이나 감시를 해야 하는
제도적 장치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노스 교수는 서구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시장경제가
효율적으로 발휘될 수 있었던 제도적 장치를 들고 있다.

물론 미국식 경영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면 실패하듯이 서구문화속에서
발전한 시장경제원리를 한국문화속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빅딜을 빠른 속도로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또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이 계속 다른 기업을 인수하고 있다.

이것은 정실자본주의의 또하나의 형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외신은 빅딜을 이루기 위해 관련 대기업을 다그치는 정부의 시장개입이
우려할 수준이라 보도하고 있다.

금감위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여튼 빅딜을 추진해 가는 과정을 보면 과연 이 나라는 시장경제의 근간인
사유재산권이나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정부가 권력으로 추진한 기업합리화조치의 경우 정권이 바뀌면서 항상
정치적 쟁점이 됐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기업의 부채비율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향상시키려는 취지의 빅딜이라면
시장원리를 최대한 활용해도 대통령 임기동안 충분히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자본시장을 개방하면 국제적인 기업 사냥꾼들이 기업의 자산가치를 평가해
M&A를 할 수 있다.

또 기업 스스로 해외 기업과 제휴함으로써 부채비율을 낮추고 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다.

이런 전략에서 성공하지 못한 기업은 시장경제하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되게
된다.

이때 정부는 연결재무제표 분석회계 등을 감독하고 부채비율의 단계별 하향
목표를 제시해 그 달성여부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제재를 엄격히 시행하면
된다.

물론 깨끗한 정부, 깨끗한 정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이런 구조조정은
성공할 수 없다.

빅딜은 사유재산제도와 선택의 자유를 부정하는 또 하나의 정실자본주의를
낳게 되므로 환율안정뿐 아니라 해외직접투자 유치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경제주체는 정실자본주의 신호를 보고 행동해야 하니, 시장경제
원리가 작용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경제전망도 틀릴 가능성이 크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