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1000년 준비] (1) 패러다임 시프트 <10> 이윤->가치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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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에서 가치창조로 ]
새 시대 기업의 화두는 이제 "우리가 돈을 벌고 있는가"가 아니다.
"우리가 가치를 창조하고 있는가"다.
"우리가 경쟁에서 이기고 있는가"는 "우리가 필요한가"로 바뀐다.
"우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가"도 "우리가 올바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가"로 달라진다.
기업의 존재의미가 이윤과 시장점유에서 가치창조와 책임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큰 기업(big company)"에서 "좋은 기업(good company)"으로의 지향점
전환이다.
20세기를 관통한 자본주의에서 경제의 목표는 "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기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단위다.
"이윤획득을 목표로 한다"고 경제학 책에 쓰여 있다.
기업가는 직접 사업을 하건, 투자를 통해 배당을 겨누건 부의 축적에
관심을 둔 사람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본을 인격화한 "상인"에 다름 아니다.
생산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최적조합으로 규정된다.
상품은 그 결과물이다.
근로자는 자본에 종속된 생산수단이다.
사회는 생산물을 소비해 주는 소비자들의 집합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 벌어진 이득은 배당과 기업의장래를 위한 사내유보로 쓰여
진다.
이를 총합한 "경제활동"의 정의는 "재산 증식"으로 요약된다.
필연적으로 기업활동은 투쟁으로 점철됐다.
성공은 자산의 크기와 시장점유율로 표시됐다.
사회와 소비자 자연은 오직 정복의 대상일 뿐이다.
경쟁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잘 싸우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표현했다.
전쟁에서 살아 남은 기업은 "큰 기업"이 된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는 종래의 기업 개념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익이 아닌 공익이 목표점이어야 한다.
기업가는 공인일 수 밖에 없다.
생산은 최적의 사회적 후생을 위한 조합으로 개념이 바뀐다.
소비자는 기업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체다.
사회는 기업 이익을 환원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집단이다.
기업의 생존논리는 대결이 아니라 상생이다.
이것은 단순히 바람직한 기업의 상이 아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이다.
기업활동의 모티브 전환은 피할 수 없다.
우선 사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신을 길러준 모태에 대한 보은이다.
교육 분담, 공공시설 제공, 인재 육성, 문화활동 지원, 사회복지 활동은
더이상 서비스가 아니다.
봉사는 본연의 의무다.
가장 많이 돌려 줄 수 있는 기업이 가장 성공하는 회사다.
소유에 대한 개념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축적된 부를 주주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기업은 사회에서 축출당한다.
지역사회와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기업지분의 일부를 갖고 있다는 게
새 시대의 소유개념이다.
그래서 경영내용은 마땅히 공개돼야 한다.
외부인사에게 경영참여의 문호를 열어주어야 한다.
미래의 기업은 이상적인 공산주의형에 가까울 것이라는 전망(기업변화
연구기관인 포트래치그룹의 수전 E.머턴스 사장)까지 나와있다.
여기에선 기업이 그 자체로 공동체가 된다.
기업주와 종업원은 더이상 지배와 종속 관계가 아니다.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다.
부의 원천이 근로자의 두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기업은 근로자들이 개인적인 성취를 얻는 광장이다.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학습기관이다.
건강과 안전,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주는 가족이어야 한다.
광범위한 경영참여는 불가피하다.
기업과 근로자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지시와 통제가 아니다.
대화와 신뢰다.
의사결정은 컨센서스로 이루어진다.
자연보호가 기업에게 주어진 또하나의 중대한 임무다.
자연은 더이상 활용의 대상이 아니다.
기업과 인간도 자연을 이루는 하나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서로 작용하며 일체를 이룬다.
이제 오염축소 자원보전 생태계보호는 기업의 몫이다.
환경친화적인 상품생산과 공해방지는 기본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기업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기업경영엔 "4R"의 체질화가 요구된다.
재활용(Recycle) 재사용(Reuse) 수리(Repair) 재조정(Recondition)이
그것이다.
21세기엔 기업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
정치인들은 지도력을 상실하고 있다.
"정치=부패.부도덕"은 공식화 됐다.
정치는 무관심의 정도를 넘어 혐오의 대상이 돼 버렸다.
교육자와 종교가에 대한 신뢰도 예전같지 않다.
이 시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확대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기업인의 지도력이 부상된다.
다양한 도전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기업인이기도 하다.
21세기엔 민간부문이 공공부문을 인수할 것이라는 게 가쿠 류자브로 캐논
회장의 예언이다.
"기업의 시대"-이는 "21세기"라는 단어의 또다른 표현이다.
기업활동과 사회활동의 목표가 같아지는 사회다.
질 좋은 상품을 만드는 "큰 회사"가 아니라 존경과 신뢰를 받는 "좋은
기업"이 이끄는 사회다.
기업이 살아있는 경제의 옹호자이면서 봉사기관이 돼야 하는 이유다.
< 특별취재팀=정만호(국제부장.팀장) 육동인(사회2부) 임혁(국제부)
이의철(정치부) 조주현(국제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8일자 ).
새 시대 기업의 화두는 이제 "우리가 돈을 벌고 있는가"가 아니다.
"우리가 가치를 창조하고 있는가"다.
"우리가 경쟁에서 이기고 있는가"는 "우리가 필요한가"로 바뀐다.
"우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가"도 "우리가 올바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가"로 달라진다.
기업의 존재의미가 이윤과 시장점유에서 가치창조와 책임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큰 기업(big company)"에서 "좋은 기업(good company)"으로의 지향점
전환이다.
20세기를 관통한 자본주의에서 경제의 목표는 "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기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단위다.
"이윤획득을 목표로 한다"고 경제학 책에 쓰여 있다.
기업가는 직접 사업을 하건, 투자를 통해 배당을 겨누건 부의 축적에
관심을 둔 사람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본을 인격화한 "상인"에 다름 아니다.
생산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최적조합으로 규정된다.
상품은 그 결과물이다.
근로자는 자본에 종속된 생산수단이다.
사회는 생산물을 소비해 주는 소비자들의 집합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 벌어진 이득은 배당과 기업의장래를 위한 사내유보로 쓰여
진다.
이를 총합한 "경제활동"의 정의는 "재산 증식"으로 요약된다.
필연적으로 기업활동은 투쟁으로 점철됐다.
성공은 자산의 크기와 시장점유율로 표시됐다.
사회와 소비자 자연은 오직 정복의 대상일 뿐이다.
경쟁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잘 싸우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표현했다.
전쟁에서 살아 남은 기업은 "큰 기업"이 된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는 종래의 기업 개념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익이 아닌 공익이 목표점이어야 한다.
기업가는 공인일 수 밖에 없다.
생산은 최적의 사회적 후생을 위한 조합으로 개념이 바뀐다.
소비자는 기업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체다.
사회는 기업 이익을 환원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집단이다.
기업의 생존논리는 대결이 아니라 상생이다.
이것은 단순히 바람직한 기업의 상이 아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이다.
기업활동의 모티브 전환은 피할 수 없다.
우선 사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신을 길러준 모태에 대한 보은이다.
교육 분담, 공공시설 제공, 인재 육성, 문화활동 지원, 사회복지 활동은
더이상 서비스가 아니다.
봉사는 본연의 의무다.
가장 많이 돌려 줄 수 있는 기업이 가장 성공하는 회사다.
소유에 대한 개념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축적된 부를 주주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기업은 사회에서 축출당한다.
지역사회와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기업지분의 일부를 갖고 있다는 게
새 시대의 소유개념이다.
그래서 경영내용은 마땅히 공개돼야 한다.
외부인사에게 경영참여의 문호를 열어주어야 한다.
미래의 기업은 이상적인 공산주의형에 가까울 것이라는 전망(기업변화
연구기관인 포트래치그룹의 수전 E.머턴스 사장)까지 나와있다.
여기에선 기업이 그 자체로 공동체가 된다.
기업주와 종업원은 더이상 지배와 종속 관계가 아니다.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다.
부의 원천이 근로자의 두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기업은 근로자들이 개인적인 성취를 얻는 광장이다.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학습기관이다.
건강과 안전,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주는 가족이어야 한다.
광범위한 경영참여는 불가피하다.
기업과 근로자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지시와 통제가 아니다.
대화와 신뢰다.
의사결정은 컨센서스로 이루어진다.
자연보호가 기업에게 주어진 또하나의 중대한 임무다.
자연은 더이상 활용의 대상이 아니다.
기업과 인간도 자연을 이루는 하나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서로 작용하며 일체를 이룬다.
이제 오염축소 자원보전 생태계보호는 기업의 몫이다.
환경친화적인 상품생산과 공해방지는 기본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기업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기업경영엔 "4R"의 체질화가 요구된다.
재활용(Recycle) 재사용(Reuse) 수리(Repair) 재조정(Recondition)이
그것이다.
21세기엔 기업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
정치인들은 지도력을 상실하고 있다.
"정치=부패.부도덕"은 공식화 됐다.
정치는 무관심의 정도를 넘어 혐오의 대상이 돼 버렸다.
교육자와 종교가에 대한 신뢰도 예전같지 않다.
이 시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확대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기업인의 지도력이 부상된다.
다양한 도전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기업인이기도 하다.
21세기엔 민간부문이 공공부문을 인수할 것이라는 게 가쿠 류자브로 캐논
회장의 예언이다.
"기업의 시대"-이는 "21세기"라는 단어의 또다른 표현이다.
기업활동과 사회활동의 목표가 같아지는 사회다.
질 좋은 상품을 만드는 "큰 회사"가 아니라 존경과 신뢰를 받는 "좋은
기업"이 이끄는 사회다.
기업이 살아있는 경제의 옹호자이면서 봉사기관이 돼야 하는 이유다.
< 특별취재팀=정만호(국제부장.팀장) 육동인(사회2부) 임혁(국제부)
이의철(정치부) 조주현(국제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