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22일로 정치에 입문한지 3년을 맞았다.

이 총재는 지난 96년 1월22일 김영삼 전대통령의 권유로 당시 집권당인
신한국당에 입당, 4.11 총선 선대위의장을 맡았다.

이어 집권당 대표를 거쳐 대선후보까지 오르는 영예를 누렸지만 97년 대선
패배와 함께 좌절을 맛보았다.

이후에는 "총풍", "세풍"과 비주류들의 반발 등 당 안팎의 도전에 시달려
왔다.

이 총재는 그동안 집권당이라는 "온실"에서 나와 야당 총재로서 혹독한
시련기를 겪으면서 나름대로 정치적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영수회담"을 갖고 유일
야당의 총재로서 위상을 확보한데 이어 당내에서도 "재집권의 유일한 대안"
으로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또 "국회 529호실 사건"을 진두지휘하며 여당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역량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지도력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확고한 지지기반이 부재한 상태에서 영남지역과 보수층 등 반 DJ세력을
겨냥한 소극적 정치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3년전 정계입문 당시 "3김 정치 청산을 통한 선진정치의 구축"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이후 구습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는게
사실이다.

< 한은구 기자 to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