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일본 출장 길에 오른다.

우리나라보다 봄이 먼저 오기 때문에 먼저 나온 봄 신상품 경향을 살펴보고
다른 나라의 문화와 패션을 보면서 재충전하려는 마음에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일본 브랜드를 재빨리 카피하려는 의도로 출장을 가기도
한다.

솔직히 국내 패션업계의 실정은 일부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브랜드와
상품이 일본 것을 모방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의 옷차림, 특히 압구정로나 홍대앞 등 패션 리더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일수록 일본풍 일색임을 알 수 있다.

주니어들 사이에 일본 패션잡지 논노와 앙앙은 이미 대중적인 필독서가 됐고
국내 패션잡지도 이를 흉내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의 패션 수준이 그다지 세련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보다 개인의 개성이 강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은 아주 펑크한 캐주얼 스타일과 고가 브랜드만 입는
로열족 등 두가지 틀 안에 갇혀있을 뿐이다.

서양문화를 무조건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패션취향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나는 한복과 기모노가 다르듯이 일본과 다른 옷입기 문화를 우리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제인간을 다룬 멀티플리시티란 영화를 보면 복제에 복제를 거듭한 결과
바보가 만들어진다.

이는 서구문화를 복제한 일본을 또다시 베낀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할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