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리포트] '체이스맨해튼의 변신' .. 끊임없는 변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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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잇달아 발표된 미국 금융기관들의 98년도 경영 보고서는 월가에
두 가지 화제를 몰고 왔다.
하나는 지난해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던 "글로벌 외환위기"의 충격파가
예상 이상으로 엄청났다는 사실이다.
월가의 대표 주자로 불리는 JP모건의 이익이 33%나 줄어드는 등 대부분
금융기관들이 큰 폭의 이익둔화를 면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하나의 화제는 이처럼 대부분이 고전한 와중에서 체이스맨해튼은행만은
실적이 도리어 향상됐다는 점이다.
체이스는 98년중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억7천만달러 늘어난 40억2천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다른 금융기관들이 거액을 날려버린 러시아와 동남아 등지에서 별 손실을
입지 않은 덕분이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화제 사이에서 월가의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체이스맨해튼은행을 군계일학으로 만들어 준 "정석경영"이다.
자산운영 과정에서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데 초점을 맞춰 영업전략을
꾸준히 개발하는 등 체이스가 기울여온 노력이 불황 속의 호황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는 판단에서다.
예컨대 이 은행이 97년말 도입한 "스트레스 테스팅"이라는 독특한 리스크
관리 기법은 성공모델의 하나로 꼽힌다.
국제유가 급락 등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에 의해 운영자산이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수치화해 대책을 수립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대응 시나리오를 매달 8~10가지씩 개발해 모든 자산에 적용하는
등 리스크 최소화를 위한 노력에 전력을 기울였다.
체이스맨해튼은행은 또 보수적인 월가에서는 파격적으로 지난해 여성
뱅커인 디나 듀블론(45)을 부행장 겸 최고 재무책임자(CFO)로 임명하는 등
변신에 박차를 가해 왔다.
체이스는 이를 통해 매출 등 외형 위주로 돼 있던 일선 사업부의 실적평가
방식을 순익 중심으로 전면 재편하는 등 재무관리에 변혁의 바람을 일으켰다.
체이스맨해튼의 성공이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이 은행의 불우했던 과거
때문이다.
체이스맨해튼은 80년대 후반 중남미 금융위기 등으로 미국 금융계를 강타
했던 대형 부실의 충격파를 가장 심각하게 받았던 회사였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3개의 은행이 이합집산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체이스맨해튼은행으로 재출범한 것이 불과 3년전이다.
한 때 월가를 풍미했던 매뉴팩처러스 하노버 은행이 부실 자산의 짐을
벗지 못한채 92년 체이스에 투항했고, 그런 체이스맨해튼은행을 96년
케미컬뱅크가 합병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출발했다.
80년대 후반 당시 이들 3개 은행은 자본금 합계액이 1백15억달러에 불과
했던 반면 중남미에서 떠안고 있던 부실 자산은 그 배가 넘는 2백60억달러에
달했다.
당시 이런 미국 시중은행의 위기와는 반대로 일본계 은행들은 막대한 엔화
자본을 등에 업고 공격적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휘젓고 있었고, JP모건과
뱅커스트러스트 등 투자은행들은 파생 상품 등 "신천지"를 개척하며 차세대
모델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10년 남짓한 사이에 상황이 정반대로 바뀐 것은 아이러니다.
리스크를 개의치 않고 세계시장을 들쑤셨던 일본계 은행과 JP모건,
뱅커스트러스트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는 반면 "월가의 천덕꾸러기"로
치부됐던 "부실 연합군"은 최우등생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초대형 부실이라는 "원죄"를 안고 합병으로 새 길을 모색하는 한국 은행들
의 타산지석이 되고도 남는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5일자 ).
두 가지 화제를 몰고 왔다.
하나는 지난해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던 "글로벌 외환위기"의 충격파가
예상 이상으로 엄청났다는 사실이다.
월가의 대표 주자로 불리는 JP모건의 이익이 33%나 줄어드는 등 대부분
금융기관들이 큰 폭의 이익둔화를 면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하나의 화제는 이처럼 대부분이 고전한 와중에서 체이스맨해튼은행만은
실적이 도리어 향상됐다는 점이다.
체이스는 98년중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억7천만달러 늘어난 40억2천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다른 금융기관들이 거액을 날려버린 러시아와 동남아 등지에서 별 손실을
입지 않은 덕분이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화제 사이에서 월가의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체이스맨해튼은행을 군계일학으로 만들어 준 "정석경영"이다.
자산운영 과정에서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데 초점을 맞춰 영업전략을
꾸준히 개발하는 등 체이스가 기울여온 노력이 불황 속의 호황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는 판단에서다.
예컨대 이 은행이 97년말 도입한 "스트레스 테스팅"이라는 독특한 리스크
관리 기법은 성공모델의 하나로 꼽힌다.
국제유가 급락 등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에 의해 운영자산이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수치화해 대책을 수립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대응 시나리오를 매달 8~10가지씩 개발해 모든 자산에 적용하는
등 리스크 최소화를 위한 노력에 전력을 기울였다.
체이스맨해튼은행은 또 보수적인 월가에서는 파격적으로 지난해 여성
뱅커인 디나 듀블론(45)을 부행장 겸 최고 재무책임자(CFO)로 임명하는 등
변신에 박차를 가해 왔다.
체이스는 이를 통해 매출 등 외형 위주로 돼 있던 일선 사업부의 실적평가
방식을 순익 중심으로 전면 재편하는 등 재무관리에 변혁의 바람을 일으켰다.
체이스맨해튼의 성공이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이 은행의 불우했던 과거
때문이다.
체이스맨해튼은 80년대 후반 중남미 금융위기 등으로 미국 금융계를 강타
했던 대형 부실의 충격파를 가장 심각하게 받았던 회사였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3개의 은행이 이합집산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체이스맨해튼은행으로 재출범한 것이 불과 3년전이다.
한 때 월가를 풍미했던 매뉴팩처러스 하노버 은행이 부실 자산의 짐을
벗지 못한채 92년 체이스에 투항했고, 그런 체이스맨해튼은행을 96년
케미컬뱅크가 합병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출발했다.
80년대 후반 당시 이들 3개 은행은 자본금 합계액이 1백15억달러에 불과
했던 반면 중남미에서 떠안고 있던 부실 자산은 그 배가 넘는 2백60억달러에
달했다.
당시 이런 미국 시중은행의 위기와는 반대로 일본계 은행들은 막대한 엔화
자본을 등에 업고 공격적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휘젓고 있었고, JP모건과
뱅커스트러스트 등 투자은행들은 파생 상품 등 "신천지"를 개척하며 차세대
모델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10년 남짓한 사이에 상황이 정반대로 바뀐 것은 아이러니다.
리스크를 개의치 않고 세계시장을 들쑤셨던 일본계 은행과 JP모건,
뱅커스트러스트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는 반면 "월가의 천덕꾸러기"로
치부됐던 "부실 연합군"은 최우등생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초대형 부실이라는 "원죄"를 안고 합병으로 새 길을 모색하는 한국 은행들
의 타산지석이 되고도 남는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