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IMF 환란조사 특위"는 25일 이경식 전 한국은행총재 등 4명의 증인과
임창열 전 경제부총리 등 9명의 참고인을 출석시켜 외환위기를 전후한
경제정책의 난맥상을 추궁했다.

이 전 한은총재는 이날 답변에서 "지난 97년 11월13일 재경원과 한은
청와대 경제수석실 등이 모여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며 "강 전 부총리는 14일 IMF로부터 2백억달러의 자금지원을 받겠다는 내용
으로 김 전 대통령의 최종재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전총재는 "한보사태가 터진 지난 97년 1월초엔 외환위기 가능성을
약하게나마 느꼈으며 같은해 8월 기아사태가 터졌을 때는 강하게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어 "S&P와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급격히 내렸을 때는 정말 어렵다
는 판단을 했으며 IMF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은 97년 11월
3일이었다"고 진술했다.

임 전 부총리는 "지난 97년 11월 20일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IMF행에 대한 감을 잡았다"며 "캉드쉬 면담결과 보고서는 지원자금
규모와 발표일정을 한국정부에 일임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19일 IMF행을
발표키로 했다는 사실에 대해선 파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증인 신문과 답변 요지.

[ 이경식 전 한은총재 ]

<> 한국은행의 외환위기 인지시점과 대응

-한은과 구 재경원은 96년과 97년에 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무역적자를
보충했다.

이는 정부의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자본수지를 통해 무역적자를 메꾸려 했던 것은 근본대책이 되지 못했다.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97년 1.4분기에 제대로 대처했으면 환란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견해에 동의하는가.

"97년 10월 하순 경제상황이 워낙 악화됐기 때문에 설령 6~7개월전에
대처했다 하더라도 이런 위기가 오지 않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97년 11월 9일 대책회의에서 한은은 IMF로 가는게 불가피하다고 했으나
재경원은 반대했다는데.

"당시 회의에서 환율변동폭을 대폭 확대하자고 했다.

이를 통해 어느정도 원화를 평가절하하면 그 선에서 막을 수 있다고 생각
했다.

강경식 전 부총리도 심각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재경원은 백업퍼실리티(예비유동성공여협약) 등 IMF 이외의
다른 방안을 우선 추진해 보자고 했다.

이를 반대할 수는 없었다"

<> 한은의 환율정책 및 외환보유고 관리정책

-96년말 30억달러이던 정부의 해외점포 예치금이 97년 3월말에 80억달러로
늘어났다.

게다가 외환보유고가 넉넉한 것처럼 대외에 공표해 불신을 더욱 키웠다.

"외환보유고가 넉넉치 못했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해외점포에 예탁했던 자금을 외환보유고에 포함시키지 않고 발표
했다면 문제가 더 커졌을 것이다"

-한국은행은 선물환시장에 개입하면서 한국에 대한 불신을 키워 왔고 이
금액도 마치 가용외환보유고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것 아니냐.

"당시엔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외환보유고 수치를 일반에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97년 2월부터 11월 사이에 정부는 금융기관에 무려 1백56억달러를 지원
했다.

또 금리도 자체조달 금리보다 0.3~1%까지 낮은 수준으로 지원해 외환보유고
를 소진시켰다.

"당시에 국가 부도가 날 뻔 했기 때문에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은 불가피
했다.

외환보유고를 소진한 것은 잘못이지만 당장 지원을 멈출 경우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한은 보고의 적절성

-11월 10일이나 12일께 김 전대통령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했는데
한은에서 이전에 외환위기 상황을 대통령에게 직보한 적이 있나.

"없다.

경제정책에 관해서는 재경원이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것으로 생각했다"

-대통령이 11월 10일께가 돼서야 외환위기 상황을 알았다는 것은 비극이다.

대통령이 몰랐다면 재경원장관이나 한은총재, 경제수석이 말해야 하지
않았나.

"대통령의 보좌를 잘못한 것에 대해 할 말이 없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떠나 충분히 보좌하지 못했다.

다만 관례에 없이 한은 총재가 이런 상황을 보고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구제금융 신청전 재경원은 지원규모를 2백억달러 정도면 된다고 생각
했으나 한은측이 3백억달러를 주장했나.

"3백억달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백억달러는 적다고 생각했다"

[ 홍재형 전 부총리 ]

-97년 11월 9일 윤진식 전 청와대비서관이 찾아온 일이 있었나.

"고교후배이며 재경원에서 같이 근무하던 윤 비서관이 당시 외환사정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보다 정확한 사태를 알기 위해 외국은행 지점 관계자들과 접촉했었다"

-11월 10일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것은 무슨 이유에서고 어떤
얘기를 했나.

"김 전대통령이 심각한 외환사정을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체적인 외환사정을 전화로 설명하니까 깜짝 놀라는 듯했다.

처음에 약 20분 정도 전화통화를 했고, 다음날에도 또 전화를 하라고 해서
이튿날 25분간 통화를 했다.

첫날은 심각한 외환사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튿날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길 외엔
없다고 말했다"

< 이의철 기자 eclee@ 김남국 기자 n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