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출범을 계기로 최근 유럽에서는 "레이더스(Raiders.기업 사냥꾼)"가
주도하는 기업경영자 물갈이가 한창이다.

레이더스들은 유럽에서 활발한 기업인수합병(M&A)을 벌이며 기존
최고경영자들을 하나씩 자리에서 내쫓고 있다.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이런 현상을 "클럽하우스 자본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유럽 경영계의 몰락으로 표현했다.

인맥과 학맥으로 얽혀있는 유럽경영계가 "경영실적"과 "투자이익"이란
잣대를 갖고 침입해온 미국식 레이더스들에 의해 와해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유러랜드 출범으로 금리가 연 3%대로 낮아지면서 시중자금이
풍부해진 데다 주가하락으로 기업의 자산가치가 저평가돼 있는 상황이
좋은 토양이 되고 있다.

이같은 유럽 레이더스의 활약은 이탈리아 루이지 지리발디(74), 프랑스의
프랑수아 피노(63), 뱅상 볼로레(47) ,스위스의 마틴 에브너(53), 독일의
칼 엘러딩(60)등 몇몇 과감한 투기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주요사례들을 점검한다.

작년 6월 이탈리아 최대 자동차업체인 피아트의 카이사르 로미티 회장은
퇴직금으로 6천만달러를 받고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그돈으로 이탈리아 최대 화학업체인 스니어사의 주식 3%를
매입, 곧바로 경영자로 재기했다.

물론 매입주식 물량은 소량이었다.

그러나 스니어에는 로미티와 인맥과 학연으로 연결돼 있는 주주조합이
실권을 잡고 있어 로미티가 곧 바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때 제동을 걸고 나선 게 바로 루이지 지리발디.

운송업에서 큰 돈을 번 그는 올초 스니어 주식 15%를 1억6천만달러에
인수하며 로미티의 인맥사단을 무력화시켰다.

지리발디는 지분을 인수하면서 "이제 고상한 인맥놀음은 끝났다.

내 게임법칙은 수익과 투자이익"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오는 28일 있을 주주총회에서 로미티와 그 친구들을 경영진에서
내쫓을 작정이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피노도 작년말 세계적 경매업체인 크리스티를
12억달러에 매입한 후 미디어와 통신업체 등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물론 그가 인수한 업체에서 기존 경영자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가족중심 경영과 실적저하로 고생하는 업체를 집중 매입하는 뱅상
볼로레는 영상산업 쪽을 집중공략하고 있다.

작년말 인수한 비디오 유통업체 파테는 인수 뒤 주가가 30%나 올랐다.

조만간 경영진을 갈아 치우고 회사를 되팔 예정이다.

물론 유럽엔 여전히 합명회사 등 비상장기업이 많이 남아 있어 미국처럼
공격적 M&A가 성행하기 어려운 토양이기는 하다.

그러나 유럽 8개국의 증시를 통합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유럽에서도
국경을 초월한 M&A는 더욱 활발해 질 것으로 보인다.

< 박수진 기자 parks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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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설명 ]

<> 레이더스 =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운다.

기업을 싼 값에 사들여 비사게 되파는 공격적 투자가들을 말한다.

보통 공개적으로 특정기업을 매입하겠다고 밝히고 증권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접수하는 방식을 쓴다.

때로는 자신이 확보한 주식과 일부 소수주주의 주식을 합쳐 회사에
압력을 넣거나 경영진을 교란시킨 뒤 주식을 회사측에 되팔아 차익을
남기기도 한다.

적대적 M&A를 주도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80년대 미국의 마이클 밀켄이 정크 본드 발행을 통해 기업을 사들이면서
레이더스로라는 말이 유행을 탔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