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 전부총리에 대한 경제청문회 증인신문에서 97년의 외환위기를 지난
74년의 외환위기와 비교한 분석이 나와 관심을 끌었다.

지난 74년은 외환보유고가 몇 천만달러 밖에 남지 않은 급박한 위기상황.

정우택 자민련 의원은 74년이 경상수지적자 외채 가용외환보유고등 여러
경제지표가 훨씬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장관들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쉽게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97년의 경우에는 대통령의 무지와 장관들의 안이한 대처로 위기를
키웠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에 대비한 경상수지적자는 5%에 육박해 74년과 97년이
비슷했다.

그러나 74년의 경우 외채는 GDP의 12%에 달해 97년보다 훨씬 많았다.

또 외환보유고는 74년 불과 5천만달러로 2주일치 수입결제분밖에 되지
않았다.

97년의 경우 10월말현재 외환보유고가 3백5억달러에 달했다.

해외점포예치금등으로 묶여있는 80억달러를 감안해도 2개월치 수입결제액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IMF(국제통화기금)등이 권장하는 3개월치 결제분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74년보다는 상황이 나았다는 분석이다.

74년의 경제상황은 97년보다 훨씬 불리했다.

또 실무자들과 연구기관들은 한결같이 외환위기 우려가 없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재무장관으로 취임한 김용환 당시 재무장관은 취임직후 외환보유고가
IBRD(세계은행) 지원금 5천만달러에 불과한 것을 알고 실무진들을 다그쳐
매일 외환상황을 체크하고 대책을 추진한다.

박정희 대통령도 물가를 희생하고서라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환율을
달러당 4백원에서 4백80원으로 한꺼번에 20%나 절하했다.

이에 비해 97년의 경우 김영삼 전 대통령은 11월이나 돼서야 위기의 실체를
인식했으며 강경식 전 부총리도 뒤늦게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또 재정경제원 한국은행 KDI의 실무진들이 무수히 위기를 경고했는데도 강
전부총리는 이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74년과 정반대였다는 분석이다.

결국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김용환 재무장관은 위기의식과 철저한 외환관리
로 성공적으로 탈출했다는게 정 의원의 결론이다.

이에대해 강 전부총리는 97년3월 자신보다 국제금융을 잘아는 사람이
부총리가 됐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잘못을 시인했다.

< 김성택 기자 idnt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