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IMF 환란조사 특위"는 27일 강경식 전경제부총리, 이경식 전한국은행
총재, 김인호 전청와대경제수석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환율 및 금리정책
<>원화의 고평가여부 등을 집중 추궁했다.

참고인으로 나온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연구위원은 "환란가능성을 지적한
97년 3월의 연구원 보고서를 박영철 원장의 지시로 회수해 폐기했다"며
"이는 당시 재경원의 강압에 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의 이같은 답변은 당시 재경원이 민간연구소의 경고를 의도적
으로 은폐/묵살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청문회에서의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강 전부총리는 증인 답변에서 "지난 97년 2.4분기중 달러공급이 많아지면서
환율이 일시적으로 떨어졌다"며 "당시 외환시장이 안정세였을 때 환율변동폭
을 자유화하는게 바람직했다"고 외환위기 초반 환율정책에 실패했음을 시인
했다.

또 "97년 7월께 동남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동남아와 우리나라의
기초경제여건이 달라 위기가 파급될 것으로는 생각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전수석은 "97년 3월10일께 강 전부총리와 이 전총재 등과 만나 문민정부
임기내에 금융개혁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외환보유고 관리 책임문제 =강경식 전부총리와 이경식 전총재는 외환
보유고 관리의 책임소재를 놓고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였다.

강 전부총리는 지난 97년 초 6백억달러가 넘는 공적보유 외화자산의 절반
이상을 가용할 수 없도록 유지.관리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냐는 질문에
"외환보유는 한은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이 전총재는 그러나 "외환보유고 관리의 최종 결정권은 당시 재경원이 갖고
있었다"며 "재경원에 가용 보유고를 늘리자고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금융실명제 =자민련 의원들은 환란청문회가 아닌 문민정부 5년간의 정책
실패에 대한 청문회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자민련 어준선 의원은 "93년 8월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해 중소기업 부도사태를 초래하는 등
외환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총재는 "경기가 나쁠 때 실명제를 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고 김영삼
전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기 때문에 정권 초기에 실시하는게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답변했다.

<>원화 가치의 과대평가 =특위 위원들은 지난 96년과 97년 당시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에 비춰볼 때 원화가 과대평가 돼 있었기 때문에 원화 절하정책이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강 전부총리는 "96년 무역수지 적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주요 수출품의
가격폭락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에 환율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97년초 환율을 일시에 절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점진적으로 실세를
수용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기아사태 처리지연 =특위위원들은 김영삼 전대통령이 법정관리를 추진
하자던 내각의 건의를 수차례 묵살해 기아사태 처리를 지연시켰다고 주장
했다.

강 전부총리는 "97년 9월4일 김 전대통령이 전화를 해 기아를 부도내지
말라고 하며 대책을 마련하라고 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기아처리가
늦어진 것은 김 전대통령 때문이 아니라 당시 기아 경영진과 노조 시민단체
등의 반발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이의철 기자 eclee@ 김남국 기자 nk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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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란관련 핵심증인 3인 증언비교 ]

<> 외환위기 첫인지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 97년 3월 입각때부터
-이경식 전 한은총재 : 97년1월 한보부도때
-김인호 전 경제수석 : 10월 홍콩증시폭락때

<> 외환위기 심각성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 11월초
-이경식 전 한은총재 : 10월께
-김인호 전 경제수석 : 11월3~4일께

<> 대응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 부실채권정리기구.금융개혁 입법추진 등
-이경식 전 한은총재 : 재경원과 협의.환율 방어
-김인호 전 경제수석 : 재경원과 동일

<> 구제금융 신청필요성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 11월부터 상황 악화돼 예측 못함
-이경식 전 한은총재 : 11월9일 첫 문제제기
-김인호 전 경제수석 : 예측 못함

<> 구제금융 신청결심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 11월13일
-이경식 전 한은총재 : 11월3일
-김인호 전 경제수석 : 강 전 부총리와 동일

<> 대통령 보고시점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 11월10일 구두보고(본인 주장)
-이경식 전 한은총재 : 11월12일 대통령 전화 받고
-김인호 전 경제수석 : 11월10일

<> 환란에 대한 책임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 책임통감 그러나 궁극적 평가는 역사에 맡김
-이경식 전 한은총재 : 수습못해 죄송 그러나 당시 한은은 실제권한
없었음
-김인호 전 경제수석 : 정책당국자로서 깊은 책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