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시공학기법 도입 ]

현대는 기아 인수에 대한 후속조치로 올해초 양사 통합조직을 하나
만들었다.

현대/기아 자동차부문 기조실이다.

최대 임무는 양사의 통합시너지 효과 극대화.

그런데 조직구조가 좀 독특하다.

기조실이 연구개발(R&D) 구매 마케팅 기획 기능을 한꺼번에 갖고 있다.

이들 기능을 별도 조직으로 두는 대기업의 관행에 비춰 보면 좀 이상한
조직이다.

지난해말 조직 개편을 단행한 현대자동차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제품기획 기능을 마케팅실로 옮겨 버린 것.

그동안 장/단기 제품기획은 기획실의 몫이었다.

이 가운데 3년안에 시판될 상품의 기획기능을 떼내 마케팅과 묶어버렸다.

이제 기획실은 장기상품만 연구하는 것으로 기능이 축소된 것이다.

왜 기획실의 역할을 축소하고 마케팅에 힘을 실었을까.

R&D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요즘에 말이다.

사실은 마케팅이 아니라 ''R&D''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당초 현대의 조직은 제품기획-기획실, 국내 마케팅-국내 영업본부, 해외
마케팅-해외 영업본부 형태로 제각각 나뉘어져 있었다.

당연히 제품개발 절차가 복잡했다.

마케팅에서 시장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받아 기획실에서 상품을 기획하고
이를 토대로 또 다시 R&D를 실시하고...

병렬식으로 일을 처리하다보니 차종 하나 개발하는데 3~4년씩 걸렸다.

정작 제품을 내놓고 나면 시장상황은 마케팅 조사때와는 달라져 있었다.

이런 결함을 치유하기 위해 현대는 동시공학(Simultaneous Engineering)
기법을 도입했다.

마케팅과 R&D를 한조직안에 묶어 모든 기능을 한꺼번에 돌리자는 것.

"상업화 지향형 R&D"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처방이다.

목표는 24개월이내 신차종 개발.

몇년전까지도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에 따라 주가순위를 매기는게
월스트리트의 관행이었다.

이런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R&D 경쟁력의 핵심은 양(투자비)이 아니라 질(상품화 능력)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본 캐논의 기술개발센터 소장을 지내기도 했던 도쿄문화대학 경영대의
야마노우치 테루오교수는 저서 "신기술경영론"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제조업체의 양대기능은 창조적 상품창출을 위한 연구개발기능과 고객과
기업간의 거리를 좁히는 마케팅이다. 이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결됨으로써
가치있는 신제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케팅종합시스템 구축이 향후
시장경쟁력의 핵심관건이다"

한통프리텔이 R&D와 마케팅을 통합시킨 이유도 이래서다.

이 회사는 지난 7일 단행한 조직개편에서 기술부문에 소속됐던 기술개발과
상품기획기능을 신기술 개발팀으로 한데 묶어버렸다.

국내 전자업체의 신상품개발기간은 평균 1년반~2년이다.

1년이면 신제품을 개발해내는 일본 소니에 번번히 패할수 밖에 없는 구조다.

LG전자의 "다기능팀"은 "추격, 소니!"를 내걸고 도입한 제도.

프로젝트별로 R&D, 마케팅, 제조 등 다양한 분야의 직원들을 테스크포스로
조직해 신제품 개발기간을 단축하자는 것이다.

"초기 R&D, 엔지니어링 샘플, 시제품생산 등 5단계로 나뉘어 순차적으로
진행되던 제품개발및 생산과정을 동시에 진행시킴으로써 개발시간을 압축
시키자"(LG전자 전명우 부장)는게 목적이다.

실제로 이 제도 덕분에 LG전자의 대표적인 히트상품인 "아하 프리" 시리즈
개발기간이 14개월까지 단축됐다.

"테크니컬 마케팅"은 또다른 마케팅과 R&D의 융합현상.

기술자가 세일즈에 나서는 일이 요즘 국내기업들사이에 흔한일이 돼 버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말 이 제도를 도입했다.

기술자를 영업일선에 투입하기 위해 R&D인력 40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3개월 과정의 마케팅교육을 거쳐 세일즈맨으로 변신하게 된다.

"마케팅과 기술을 접목시켜 기술자체를 마케팅의 대상으로 만들어갈 필요성
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주)효성의 MDC(Marketing Development Center) 제도도 그런 예다.

연구원 8명으로 구성된 이 센터의 주요 임무 역시 기술마케팅.

그런데 이들은 로테이션 근무가 원칙이다.

연구소와 영업현장을 오가며 기술과 마케팅 마인드를 겸비한 "다기능
인간형"을 다져가는 것이다.

기술의 조류는 이제 한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 흐름은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넘치면서 교차되고 있다(미래학자 피터
드러커).

기술, 시장, 고객.

이들이 삼위일체가 될때만이 기술혁신은 성공할수 있기 때문이다.

< 노혜령 기자 hroh@ >

------ [ 용어해설 ] -------------------------------------------------

<> 다기능팀 전략

일반적으로 대기업에서는 연구개발, 생산, 마케팅, 판매의 각부문이 독립적
으로 기능해 왔다.

그동안 기업이 기능적인 종적라인을 따라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객과의 거리가 벌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연구개발의 경우 고객과 상관없이 "기술지상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나타났다.

R&D 부문만 고립된 구조는 성공적인 상품화로 연결될 수 없다는게 그동안
여러 사례에서 입증됐다.

상품화 역량이 강한 우량기업들을 보면 마케팅, 영업, 아프터 서비스,
제조, R&D 부문이 유기적 관계를 강화하는게 주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이 바로 다기능팀(Cross-functional team) 전략이다.

조직자체를 통합하거나, 특정 프로젝트별로 다기능팀을 구성, 지휘체계를
통일하는게 요즘 전세계 기업의 표준 관행으로 정착됐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신속히 만드는 신제품혁신에는 이런 조직이 가장 큰
효율을 발휘할수 있기 때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