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 경북대 교수 / 경제학 >

동아시아의 환란문제를 이야기할때 대체로 세가지의 책임론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미국 책임론 혹은 미국 월가를 본부로 뛰고 있는 국제투기자본
책임론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 책임론이다.

일본의 내수부족이 일본의 불황을 가져오고 결국 동아시아가 무역적자
누적을 거쳐 환란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동아시아 각국의 내부 책임론이다.

국내경제구조의 결함으로 자본의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라는
험악한 파도를 타지 못하고 오히려 파선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 가운데 한국에서는 내부 책임론이 압도적이다.

재벌구조탓으로, 과잉투자탓으로, 외환컨트롤(Control)시스템의 결여탓으로,
당시의 경제정책책임자의 무능탓으로 환란을 당했다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청문회도 완전히 그런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다.

외적 요인보다는 내적 요인탓이고 내적 요인중에서도 몇몇 경제책임자와
재벌탓이라는 논리에서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다.

IMF의 "조건"에 따라 "구조조정"을 하는 정책노선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이것은 말레이시아의 입장과는 정반대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국제투기자본 때문에 환란을 당했다는 것이고
따라서 환란의 주범 국제투기자본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번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 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주도한
구조조정론과 마하티르 총리가 주도한 국제투기자본규제론이 치열하게 대립
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 결과 공동선언문에서는 내부책임론에 입각한 구조조정론과 투기자본을
규제하는데까지는 가지 않고 다만 예의관찰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론과 투기자본주의론이 통합돼 병행추진한다는
뜻이 아니라 두 입장이 함께 포함돼 각각 어느 한쪽으로 추진한다는 뜻이라는
사실이다.

아울러 주목해야 할것은 공동선언문에서 일본책임론이 쑥 빠진 것이다.

일본책임론은 특히 미국쪽에서 집요하게 제기해왔던 것인데 미국의 주장이
통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3백억달러를 헤아리는 소위 "미야자와 플랜"
의 약효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일본책임론이 빠진 것은 그만큼 APEC이 일본의 무대였고, 미국
으로서는 체면이 구겨진 무대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런데 한국은 어찌해서 내부책임론에만 매달려 있는가.

월가의 대부 소로스 조차 투기자본의 책임론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국제자본시장이 중심-주변 구조로 돼 있고, 중심자본주의의 금융자본
이 주변자본주의에 밀물처럼 밀려가면 경제가 "붕" 떴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가면 "꽝"하고 터져 버린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붕-꽝" 현실에서 안전한 나라는 몇몇 경제대국뿐이고 대부분의
나라는 견뎌내지 못한다고 보고,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세계자본주의는
공황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클린턴 미국대통령까지도 최근 한국의 환란에는 투기자본의 책임도 있다고
시인했을 정도다.

실은 지금 세계적으로 투기자본의 규제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분위기다.

지금 경제청문회에서는 국제투기자본에 대한 비판이나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입도 귀도 틀어막고 있는듯 하다.

정부야 IMF 눈치보느라고 혹시 그럴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국회에선 왜
그럴까.

또 일본책임론에 대해 왜 문제제기를 못할까.

사실 한국은 국제투기자본의 직접적 공격에 의한 피해 못지않게 동아시아에
대한 국제금융자본의 공격으로 손실을 본 일본자본이 손실부분을 메우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긴급히 자금을 회수함으로써 입은 타격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부총리의 청문회 증언에서 일본이 11월부터 갑자기 70여억
달러를 빼간 것이 결정타였다고 지적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환란 청문회는 왜 하는가.

투기자본 책임론과 일본 책임론에는 눈을 감고 내부 책임론만 쳐다보고,
그것도 전정권의 몇몇 경제정책 책임자의 개인적 책임문제로 돌려 소리만
요란하게 두들겨 패는 여당의 우둔한 몽둥이 놀음과 구조조정의 그늘을
찾아가 자극하며 내부구조조정조차 어렵게 만드는 야당의 어리석은 작태가
어찌 환란을 당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