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3시 대검찰청 15층 회의실.

서울 부산지검 소장검사들의 서명파동을 진화하기 위해 전국검사회의가
열렸다.

오후2시로 예정됐던 이회의는 지방에 내린 눈으로 참석자들의 도착이
지연돼 1시간 늦게 시작됐다.

당초 이 회의는 전국 차장및 수석검사회의 형식으로 3일 열리기로 돼있었다.

그러나 서명파동으로 하루 앞당겨져 갑자기 개최됐다.

회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보안속에 비공개로 진행됐다.

15층으로 향하는 모든 출입구가 통제돼 외부인이 얼씬하지 못했다.

출입기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출입기자단을 위한 유일한 전령은 김윤성 대검공보관이었다.

그가 전해주는(?)일방적인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가지가 있었다면 회의초반에 수뇌부의 허락하에 신문공동사진단이
언론보도용으로 찍어온 사진 몇장.

이를 통해 회의분위기를 유추해야 했다.

마치 인공위성사진을 판독해 정보를 알아내는 방식이었다.

사진을 통해 본 회의분위기는 무겁기 그지 없었다.

대전 법조비리사건을 발표한 이원성 대검차장을 중심으로 좌우 양쪽에
대검고위간부 등이 줄줄이 앉아 참석검사들을 마주보고 있었다.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난상토론장이기 보다 무슨 어전회의나 국무회의
장면을 연상케 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분위기에서 수뇌부퇴진요구 등 다양한 얘기들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회사로 치면 경영진이 있는 자리에서 사원들이 경영부실을 비판토록 한
것같은 느낌이었다.

회의가 시작된지 6시간30분뒤인 밤 9시30분께 김 공보관이 예상대로
"수뇌부퇴진 얘기는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소장검사들이 수뇌부퇴진을 요구했다고 쓴 언론을 경고하는 듯했다.

소장검사들은 무슨 얘기를 했느냐는 질문에도 "여러가지를 얘기했다"며
입을 다물었다.

회의는 자정을 넘어 11시간만인 3일 새벽2시께 끝났다.

그리고 30분후인 2시30분께 대검공보관은 발표문을 내놓았다.

"앞으로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검찰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평검사명의의 석줄짜리 A4용지 한 장이 전부였다.

이날 회의에 쏠린 국민적 관심을 감안하면 발표문내용은 어이가 없었다.

이러고도 국민들의 신뢰를 받겠다는 것인가.

< 고기완 사회1부 기자 dada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