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들이 연체대출금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실직자가 늘고 소득이 줄어들어 연체율이 껑충 뛰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원들은 대체로 만기 대출금과 이자가 1개월이상 연체됐을 때부터
"행동"을 개시한다.

먼저 연체명세서를 뽑아 사후관리 파일을 만든다.

그다음 서면통지를 한다.

대출금변제독촉장도 보낸다.

그래도 별 효과가 없는 연체자에게 전화를 건다.

우선 기분 나쁘지 않게 시작한다.

"별 일 없습니까. 이자 내는걸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는 식으로 최대한
부드럽게 해야 한다.

그러면 연체자는 언제까지 갚겠다고 약속한다.

약속사항을 사후관리 파일에 기재한 후 기다린다.

약속을 어기면 또다시 전화한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문안인사 하듯 구슬린다.

경우에 따라선 10번이고 20번이고 전화한다.

조흥은행 영업부 관계자는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하는게 중요하다"며
"윽박지르면 일을 그르친다"고 설명했다.

전화는 대체로 낮에 직장으로 하는게 원칙이다.

가족도 모르게 대출을 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가족내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연말등 결산시점이 다가오면 밤중에 집으로 전화한다.

이때도 상담하듯 해야 한다는게 은행원들의 수칙이다.

하지만 참다못한 일부 은행원은 고압적인 자세로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는
비난도 듣는다.

그러다 3개월이상 연체로 접어들었을 땐 법적절차에 들어간다.

연체자가 살고 있는 동사무소에 민원우편을 보내거나 직접 찾아가 주민등록
등본을 떼 거주지이동현황을 파악한다.

살았던 곳에 대한 등기부등본을 모두 떼보기 위함이다.

혹시라도 감춰둔 재산이 있을까 확인하는 것이다.

때로는 주소지를 옮기고 전세를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추적결과 재산이 파악되면 즉시 가압류에 들어간다.

이와함께 대면 작전도 병행한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이용해 직접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본인을 만나 어려운 사정을 들어보고 "제발 돈을 갚아 달라"며 읍소도
해본다.

이렇게 연체축소에 공을 들이다보면 천만원가량되는 대출금을 2~3년에
걸쳐 10만원, 20만원씩 꼬박꼬박 갚아 나가는 사람도 생긴다.

요즘은 각 은행들이 연체대출금을 새로운 대출로 전환해 주는 대환제도를
많이 사용하긴 하지만 아직도 "전화와 대면"을 통한 고전적인 방식이 통용
되고 있다.

덕분에 대형 시중은행들은 작년 12월 한달동안 적게는 2천억원, 많게는
1조5천억원씩 연체대출금을 줄일 수 있었다.

< 이성태 기자 ste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