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눈에 비친 '식민지'..김녕희씨 장편소설 '센닌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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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녕희(63)씨가 오랜만에 장편소설 "센닌바리"(경운출판사)를
선보였다.
일제 식민통치 말기 한 소녀의 눈을 통해 민족적 아픔과 굴곡진 가족사를
그린 작품이다.
센닌바리(천인침)란 강제징병 때문에 생긴 풍속.
무명천에 붉은 실로 무운장구라는 글씨를 천 명의 여자가 한땀 한땀씩
수를 놓는다.
그 정도의 정성이라면 총알도 범접치 못할 것이라는 기도가 담긴 수다.
당시 징병 나가는 집에선 길거리에 지나가는 여인들을 붙들고 수를 놓아
달라고 매달렸다.
출정 병사가 센닌바리 수건을 머리에 매거나 허리에 차면 전장의 총알이
비켜갈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생명의 바느질"을 엮었던 것이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동포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여학생인 가희의 아버지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으로
폐결핵을 앓고 있다.
그는 군청에서 일하라는 회유를 뿌리치고 징병을 피해 과수원 땅굴에
숨었다가 이시가와에게 발각돼 구속된다.
이시가와는 아버지를 구해달라고 매달리는 가희의 어머니를 넘보고
어머니는 곧 석방시켜 주겠다는 꼬임에 빠져 임신한 몸으로 그에게
유린당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내 전장으로 끌려가고 소식도 끊어진다.
아버지의 생사를 몰라 피를 말리는 가족들.
어머니는 밤마다 센닌바리를 만들며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드디어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은 쫓겨간다.
작품 말미에 아버지의 생존사실은 확인된다.
하지만 이시가와는 성난 군중을 피해 가희네 과수원 땅굴로 숨었다가
그 속에서 산 송장으로 발견된다.
똑같은 굴에서 식민지의 아버지는 병든 몸으로 희망을 기다리다 세상
밖으로 나오고 침략자는 돌팔매를 피해 들어갔다가 절망적인 상태로 죽어간
것이다.
이 소설은 또 주인공 가희와 일본인 중학생 가즈오, 아버지와 친일파인
큰아버지 등의 관계를 통해 역사의 이면을 새롭게 조명한다.
일본인 교사 구니모도를 통해서는 군국주의와 평화주의자의 이념적 거리를
비춰보인다.
날카로운 현대사의 파편을 서정적으로 그린 문체도 돋보인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씨는 "센닌바리를 소도구로 동원해 우리 어머니 세대의
슬픈 역사를 수놓은 이 작품은 우리에게 바늘만 볼 게 아니라 그 바늘로
수놓고 있는 인간, 곧 우리의 조상을 가슴 속에 새겨넣게 한다"고 평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8일자 ).
선보였다.
일제 식민통치 말기 한 소녀의 눈을 통해 민족적 아픔과 굴곡진 가족사를
그린 작품이다.
센닌바리(천인침)란 강제징병 때문에 생긴 풍속.
무명천에 붉은 실로 무운장구라는 글씨를 천 명의 여자가 한땀 한땀씩
수를 놓는다.
그 정도의 정성이라면 총알도 범접치 못할 것이라는 기도가 담긴 수다.
당시 징병 나가는 집에선 길거리에 지나가는 여인들을 붙들고 수를 놓아
달라고 매달렸다.
출정 병사가 센닌바리 수건을 머리에 매거나 허리에 차면 전장의 총알이
비켜갈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생명의 바느질"을 엮었던 것이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동포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여학생인 가희의 아버지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으로
폐결핵을 앓고 있다.
그는 군청에서 일하라는 회유를 뿌리치고 징병을 피해 과수원 땅굴에
숨었다가 이시가와에게 발각돼 구속된다.
이시가와는 아버지를 구해달라고 매달리는 가희의 어머니를 넘보고
어머니는 곧 석방시켜 주겠다는 꼬임에 빠져 임신한 몸으로 그에게
유린당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내 전장으로 끌려가고 소식도 끊어진다.
아버지의 생사를 몰라 피를 말리는 가족들.
어머니는 밤마다 센닌바리를 만들며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드디어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은 쫓겨간다.
작품 말미에 아버지의 생존사실은 확인된다.
하지만 이시가와는 성난 군중을 피해 가희네 과수원 땅굴로 숨었다가
그 속에서 산 송장으로 발견된다.
똑같은 굴에서 식민지의 아버지는 병든 몸으로 희망을 기다리다 세상
밖으로 나오고 침략자는 돌팔매를 피해 들어갔다가 절망적인 상태로 죽어간
것이다.
이 소설은 또 주인공 가희와 일본인 중학생 가즈오, 아버지와 친일파인
큰아버지 등의 관계를 통해 역사의 이면을 새롭게 조명한다.
일본인 교사 구니모도를 통해서는 군국주의와 평화주의자의 이념적 거리를
비춰보인다.
날카로운 현대사의 파편을 서정적으로 그린 문체도 돋보인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씨는 "센닌바리를 소도구로 동원해 우리 어머니 세대의
슬픈 역사를 수놓은 이 작품은 우리에게 바늘만 볼 게 아니라 그 바늘로
수놓고 있는 인간, 곧 우리의 조상을 가슴 속에 새겨넣게 한다"고 평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