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경제청문회에서는 소위 "청문회 스타"를 탄생시키지는 못했다는
평이다.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가능한 경제정책의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인 만큼
눈에 띄게 똑 떨어지는 성과를 얻거나 "대어"를 낚기가 어려웠다는 것이
"스타 배출" 실패의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또 다양한 경제 용어와 수치가 자주 등장하는 등 질의에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된 점도 "튀는" 의원을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평소 똑똑하다고 소문난 의원들이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그동안 과대 포장됐던 의원들의 "밑천"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나마 제 역할을 해낸 특위위원으로는 국민회의 김원길 정세균 김민석
의원과 자민련 정우택 의원 정도가 꼽힌다.

<>.김원길 의원은 이번 청문회의 가장 큰 수확으로 거론되는 정태수씨의
1백50억원 대선자금 제공 증언을 이끌어냈다.

김 의원은 청문회를 앞두고 정씨가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는 후문이다.

최소한 "자물통" "모르쇠"로 통해온 정씨의 입을 열어 "한보 사건"의
몸통을 슬쩍 엿보게 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김 의원은 또 여권의 경제통 답게 경제관료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강경식
전경제부총리와 "맞대결"을 펼쳐 이목을 끌었다.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강 전부총리가 주장하는 "날벼락론"에 대해 외환위기
에다 기업부도로 금융위기가 겹친 "쌍둥이 위기론"으로 맞받아치며 당시
경제관리팀의 실책을 추궁했다.

강 전부총리는 김 의원만 나오면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정세균 의원은 이번 청문회의 취지와 본질에 맞게 가장 정책적인 질의를
많이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부 의원들이 "폭로성" "인기성" 발언의 추태를 보이는 속에서 성실하게
환란의 원인 규명에 열정을 쏟았다.

또 97년 2월부터 11월까지 무리한 선물환시장 개입으로 오히려 외환보유고
만 소진하게 됐다고 지적하는 등 전문성이 높은 질의로 성가를 올렸다.

이외에 PCS사업 과잉투자, 기아및 한보 부실대출, 종금사의 기업어음 이중
매각 경위 등을 따지는 등 다각도로 질의를 벌였다.

<>.정우택 의원은 지난 74년과 97년 외환위기 탈출 비교론을 제기해
"히트"를 쳤다.

정 의원은 "74년에는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원화환율을
20%나 절하하고 단기유동성 확보에도 성공했다"며 "97년에는 경제관료들의
안이한 위기의식과 대통령의 무지로 적절한 대처를 못했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또 임창열 전부총리를 상대로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IMF행 결정
의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임 전부총리가 IMF행을 사전에 알았을 것이라는 국민들의 "심증"이 확산
된데는 정 의원의 집요한 추궁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김민석 의원도 강경식 전부총리의 전담 마크맨으로 수시로 청문회에
교체 투입돼 "이름값"을 해냈다.

김 의원은 수집한 각종 데이터를 정확하고 완벽하게 숙지한 뒤 증인의
답변속에서 허점을 찾아내 물고 늘어지는 "치밀함"과 "저돌성"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가에서는 강 전부총리가 아무래도 김 의원의 신문을 가장 곤혹스러워
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김 의원은 또 강 전부총리의 소위 "펀더멘털 튼튼론"에 대해 호우가 와서
당장 터진 둑을 막아야 할 사람이 설계도를 그리고 땅을 보러 다니는게
맞느냐"고 말해 강 전부총리를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 한은구 기자 to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