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엽 < 주불한국대사관 경제수석참사관 >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지역에 사는 마리안 부인은 국경 너머 마을의 물건값을
자기 마을과 비교한 후 보다 저렴한 쪽에 가서 손쉽게 쇼핑을 하고 또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은행과 거래한다.

과거에는 화폐단위가 달랐기 때문에 가격비교가 쉽지 않았지만 유로가
출범하면서 복잡한 환율 계산없이 비교가 간단하기 때문이다.

이는 유로출범으로 당장 볼 수 있는 유로랜드내 생활 단면이다.

유로출범은 단순한 화폐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단일시장, 즉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는 것이다.

유럽(유로 가입국)은 진정한 의미의 경제통합을 이루었으며 경제적으로
유럽합중국을 설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로출범은 유럽 역사에 하나의 큰 획을 그은 대사건이다.

그러면 유로출범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선 어느 나라보다도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럽 단일시장 출범은 도전과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둘째 세계금융시장의 판도변화에 따라 대외금융 분야에서 보다 신축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유로출범으로 우리의 대EU 수출이 당장 늘어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처럼 유로출범으로 유럽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경우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출을 증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대외금융 분야를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미 달러화 영향력하에 있는 국제
금융 시장에 크게 의존해 정책수단이 다소 제한되어 왔다.

유럽 금융시장이 미국만큼 발전할 경우 우리의 선택권 또는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카드가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과연 그러면 우리는 유로출범에 앞서 얼마나 대비를 해왔는가.

최근 우리 언론과 연구소 등이 유로출범과 관련해 많은 보도를 하고 좋은
제안을 하고 있으나 우리가 충분한 대비를 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는 그동안 우리가 유럽의 중요성을 간과해 왔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맞았던 작년말부터 현재를 되돌아 보자.

외환위기 극복에 결정적 계기가 됐던 금년 1월, 단기채무를 중장기 채무로
전환하기 위한 교섭에서 유럽 금융기관들은 미국에 맞서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타결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 당시 프랑스는 한국에 대해 미국과 거의 비슷한 80억달러 이상의
채권을 갖고 있었다.

유럽 전체로는 미국과 일본의 채권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우리 정부가 최대 역점을 두고 있는 외국인투자 유치를 보면 유럽에 대한
투자유치 노력이 미국에 비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년 유럽의 대한국
투자는 미국및 일본보다 훨씬 많다.

또 지금까지 우리의 유럽시장 진출을 보면 우리는 세계 최대규모의 유럽
시장보다는 규모가 작은 동남아 등 여타 지역에 주력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몇가지 예만 보더라도 그동안 우리가 기울인 노력은 주로 미국과
일본에 편중되어 왔고 유럽에는 무관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로화와 관련한 기술적 문제는 접어 두고 유로출범과 함께 우리가 근본적
으로 준비해야할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유럽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유럽을 정확히 배우자는 것이다.

요즘 우리 정부와 업계들의 유럽에 대한 관심이 다소 늘어났는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아직도 경제 관련 기관이나 업계의 비중이 미국과 일본에 편중돼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는 이런 경향을 수정하고 언어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탁월한 유럽
전문가를 양성해 보다 적극적으로 통합된 유럽에 대처해야 한다.

그동안 유럽에 대한 관심이 적었고 경쟁국에 비해 유럽진출이 많이 뒤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를 주최하는 우리는 이를 계기로 실질적 경제
통합을 이루고 있는 유럽과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유럽 통합의 역사적인 출발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우리의 입지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