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는 국제 금융위기를 심층 분석하는 "글로벌 전염" 시리즈의
마지막 편(18일자)에서 "아시아 등의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이중잣대를 적용했다"고 비판했다.

이로인해 미국식 개방경제 시스템에 대한 반발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의 세계경제 시스템이 적절하지 않다는데 거의 모두가 동의하고
있지만 뾰족한 처방이 없다는 점이 오늘날 국제경재의 가장 큰 위험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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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위기가 지속됨에 따라 미국의 위선에 대한 각국의 비난도 계속
되고 있다.

미국이 고비마다 "이중 잣대"를 휘둘렀다는 것이다.

태국과 브라질의 외환위기때 금리인상과 부실은행 퇴출 등 "고통 감내"를
요구했던 클린턴 행정부가 정작 자국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조치를 취한 것이
단적인 예다.

지난해 9월 아시아 위기의 여파가 미국까지 덮칠 기미가 뚜렷해지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세차례에 걸쳐 금리를 끌어 내렸고 클린턴
대통령은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 대해 동반 금리인하 압력을 넣었다.

FRB는 심지어 위기에 빠진 헤지펀드(롱 텀 캐피털)에 대한 구제금융을
진두지휘하기까지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시아의 몇몇 국가들은 놀랄만한 복원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태국은 바닥에서 벗어나는 징후다.

지난해 한국은 1백21%의 주가 상승률(달러화기준)을 기록했다.

태국의 주가도 작년 한햇동안 34% 올랐다.

그러나 한국이나 태국은 아직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단계에
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만약 이들 나라가 경제 펀더멘틀의 구조개혁을 이뤄낸다면 외환위기 이전
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건실한 금융 시스템과 개방경제, 강력한 법규와 민주적인 정치 시스템의
뒷받침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세계 도처에서 서방 자본주의, 특히 미국식
시스템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을 선언한 러시아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이런 기류는 일본에서까지 감지되고 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이른바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의 잔인함과 몰인정성을
비난하고 있다.

세계 2,3위의 경제 대국인 일본과 독일은 단기자금 이동에 대한 규제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미국 주도의 시장 자유주의에 공공연히 반기를 들고
있다.

급기야 작년 말에는 미국이 3년동안 공들여 추진했던 다국적 투자협상(MAI)
이 무산되고 말았다.

프랑스와 호주 캐나다 등이 강력 반대한 탓이었다.

이들 국가가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외국기업과 개방된 시장에 경제
주권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말레이시아는 작년 9월 자본규제 조치를 도입한 이후 환율안정을 되찾았다.

주가 및 외환 보유고도 회복됐다.

역시 단기자본 이동을 규제하고 있는 칠레의 모델도 다른 개도국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중국이 외환위기를 비껴갈 수 있었던 데는 위안화를 태환통화로 바꾸라는
서방의 권고를 듣지 않았던 것도 한 몫을 했다.

현재의 국제경제 시스템이 부적절하다는 사실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무엇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세계 중앙은행 설립 등 수많은 처방전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묘안이 되지는 못한다.

아시아의 금융위기에서 세계가 배워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 경제적으로 자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경제의 기둥인 금융
시스템을 온전하게 가동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엄청난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사상 최장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 경제의
앞날이다.

월가의 몇몇 전문가들은 미국이 아시아 등에 비해 훨씬 엄격하고 잘 정제된
금융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아시아와 미국을 비교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미국도 아시아와 다를 것이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주가 상승이 소비를 견인하고 있고 기업들이 투자자금을 외국의 돈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태국 및 인도네시아의 경우와 똑같다.

또 세계적인 경기침체 상황에서 금리인하를 통한 내수 확대를 꾀한 최근
미국의 조치는 80년대말 일본이 걸었던 "거품 키우기"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 정리=이학영 뉴욕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