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준순(45) 풍년농산 사장.

그의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아날로그 경영인이라면 그는 디지털 경영인이다.

나 사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양곡수집 가공 포장 유통 등 모든 처리과정을
컴퓨터로 자동화했다.

양곡수집 과정부터가 다르다.

그의 아버지는 말린 벼만 수매했지만 그는 갓 수확한 벼도 산다.

벼의 수분 함량을 측정, 말린 벼 상태의 중량으로 환산해주는 호퍼스케일
덕분이다.

수매가격은 그자리에서 결정된다.

덕분에 농민들은 벼를 말리는 수고를 덜게 됐다.

수매된 벼는 사일로로 옮겨져 도정될 때가지 보관된다.

이곳에선 컴퓨터가 사이로내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 벼를 건조하는 것은
물론 가장 맛있는 상태로 보관한다.

그의 아버지는 수매한 벼를 창고에 넣어두었다.

비라도 오면 아버지는 벼가 썩을까 염려했다.

도정 과정도 전산화돼 있다.

컴퓨터에 연결된 기계가 알아서 도정해 준다.

도정된 벼는 벼품위 판정기가 등급별로 분류한다.

포장 운송 하역 등 유통과정도 규격화 자동화돼 있다.

도정된 벼는 5kg 10kg 20kg 단위로 포장돼 소매상에 공급된다.

나 사장은 농가의 물벼를 직접 수집한뒤 가공 포장까지 한꺼번에 처리
함으로써 농민 정미소 양곡수집상 소매점 최종소비자에 이르는 기존의
다섯단계 유통과정을 두단계로 줄였다.

소비자들은 질좋은 쌀을 싼값에 맛볼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완성된 전산화의 효과가 나타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력은 3분의 1 정도 절감됐다.

유통과정 단축으로 물류비용도 많이 줄었다.

대형 할인점도 나 사장의 벼를 선호하게 됐다.

나 사장의 거래처중에는 롯데백화점 LG유통 한화유통 등 굵직한 유통
업체들이 많다.

나 사장의 경영스타일엔 디지털 경영방식이 배어 있다.

공장가동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일일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공장 구석구석에 설치된 CCTV를 통해 공장현황을 손금 보듯 파악한다.

밤에도 따로 경비원이 없다.

CCTV와 연결된 노트북을 통해 집에서 공장 내.외부를 환히 관찰할 수 있다.

그는 돈도 직접 만지지 않는다.

모든 금융거래를 집에서 노트북으로 홈뱅킹을 통해 처리한다.

"스피드 고객만족 비용절감 없인 디지털 광속경제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디지털 경영인 나 사장의 철학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