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건 <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전경련 한국경제 해외로드쇼 대표단의 일원으로 유럽과 미국 행사에 참가
하면서 국제 금융기관들의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뀐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럽의 금융중심지인 런던에서는 투자기관을 중심으로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한 관심이 예상외로 컸다.

우리나라 금융개혁에 대한 평가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우호적이었다.

이들은 앞으로 5년 이내에 한국 금융기관들이 아시아의 주요국인 일본이나
중국의 금융기관에 비해 견실한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한국 증시에는 그동안 시세차익을 노린 벨류펀드(value fund)가 주로
투자했으나 앞으로는 이런 금융개혁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동시에 경제가
조기에 회복될 것을 기대하고 있어 그로스 펀드(growth fund)의 투자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에 대한 독일 은행들의 관심도 영국 못지 않게 높았다.

7개 은행들이 방문을 요청했으나 일정 때문에 한국에 돈을 많이 빌려주고
있는 4개 은행으로 제한했을 정도였다.

현재 독일계 은행들은 과잉유동성 상태에 처해 있다.

독일경제가 저성장국면으로 진입한지 이미 오래인데다 지난해 이후 금융
위기에 직면한 신흥시장으로부터 투자를 회수해 막대한 자금이 적절한
운영처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의 금융기관들은 지난해 연초 이후 한국에서 돈을 회수해 남미
국가로 돌린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었다.

이들은 3%포인트 이상의 높은 가산금리에도 불구하고 연체없이 충실히
이자를 상환하고 있는 한국의 저력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앞으로 우리 금융기관들은 이들로부터 대출한도를 확대하고 가산금리를
대폭 낮출 수 있도록 지금부터 정보교류를 적극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뉴욕 로드쇼에서는 월가 투자금융기관들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전 "뉴욕타임스"지의 보도에 의하면 그동안 미국 정부를 움직여 아시아
금융시장의 조기 개방을 유도한데는 이들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들의 질문은 과다하게 침체된 우리나라 경기의 회복 여부보다는 IMF의
처방대로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지 여부에
집중됐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영미계와 독일 금융기관들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시각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영.미 금융기관들은 개발금융의 산물인 우리기업의 높은 부채비율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반면 은행을 통해 산업을 육성해온 독일계는 보다 양허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독일의 선도은행인 도이췌방크는 벤츠의 대주주로서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를
육성했다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독일이 어떻게 자본시장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서도 상업은행 중심
으로 재무구조가 건전한 기업과 투명한 경제시스템을 구축했는지를 적극
벤치마킹해야 한다.

이런 금융시스템의 장점을 배우는데는 금융기관을 직접 유치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지금 우리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금융기관 대외매각시
영.미금융기관 뿐만 아니라 독일 등 유럽의 유수금융기관들의 균형잡힌
유치를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의 금융계 인사가 제기한 뼈아픈 물음을 소개하고자 한다.

"진정 한국은 미국의 카지노 자본주의가 한국에 정착돼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