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한국화가 김병종씨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은 현실에서의 위계질서를
벗어나 있다.

그의 작품에선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나 무생물까지도 하나같이 동등한
존재의 가치를 누린다.

그것은 어린이의 무구한 눈에 투영된 무한 평등의 세계다.

그 바탕엔 생명과 자연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깔려 있다.

김씨가 4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3216-1020)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이땅의 자연과 사람을 넘치는 애정으로 표현한 "생명의 노래" 연작 45점을
발표한다.

김씨의 작품엔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 짙은 시정과 경쾌한 유머가 한 화면에 공존한다.

그의 작품은 재료부터 특이하다.

화선지 대신 전통 닥종이 원료를 천연 풀에 반죽한후 미장하듯 몇겹씩 바른
한지판을 쓴다.

그 판은 이미 자연의 한 부분으로 동화된 낡은 토담이나 해묵은 장판같은
느낌을 준다.

그 위에 거칠면서도 강한 맛의 필선으로 하나씩 형태를 그려간다.

말등에 올라 앉은 새나 아이, 연못에서 노니는 고기, 나비, 구름과 산..

이들 대상은 극도로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되지만 살아 움직이는 듯 힘이
넘친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따뜻하고 유쾌한 느낌을 준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씨는 "김씨는 고구려 벽화에서부터 문인화, 민화에
이르기까지 전통회화를 세밀하게 공부한후 그것을 작업속에 끌어들인 결과
독창적 화면을 얻어냈다"고 평했다.

< 이정환 기자 jh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