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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유머] '생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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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 was the first day for Hellen, the newly-hired salesgirl in the
    maternity shop, and a hectic day it had been.

    The store had been crowded from the moment its doors opened, and the
    girl had sped from one customer to another without stopping.

    Now, just as she concluded a large sale and anticipated a breathing
    spell, the doors opened and a fresh flood of obviously expectant ladies
    poured in.

    "My God!" the exhausted salesgirl cried in anguish.

    "Doesn''t anyone do it for fun any more?"

    -----------------------------------------------------------------------

    <>maternity shop : 임산부 용품매점
    <>hectic : 열광한, 들뜬
    <>breathing spell : 숨쉴 겨를
    <>obviously expectant lady : 임신한 것으로 보이는 여자
    <>anguish : (심신의)심한 고통
    <>for fun : 장난으로, 재미로

    -----------------------------------------------------------------------

    산모원 매점에 첫 출근한 여자 판매원 헬렌은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점포문을 열기가 무섭게 손님들이 연방 들이닥쳐 붐비는 바람에
    잠시도 쉴 겨를 없이 이 손님 저 손님한테로 뛰어다녀야 했다.

    한바탕 손님들을 치르고 나서 이제 한숨 돌려볼까 하는 판인데 또 문이
    열리더니 배가 불룩한 여자들이 떼지어 들이닥쳤다.

    "맙소사! 아니 이제 재미로 그 짓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기진맥진한 아가씨는 그만 비명을 질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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