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저널] 국내용 '잿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페르시아 왕이 행군 중에 한 마을에서 쉬게 됐다.
왕이 근처 과수원에서 사과 하나를 따먹었다.
그러자 그의 부하 장수가 과수원 주인에게 달려가 돈을 지불하고 돌아왔다.
이를 지켜 본 왕이 "과수원 주인은 짐이 따먹은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할텐데 돈까지 준 영문은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부하장수는 "왕께서 돈을 지불하지 않고 사과를 드시면 왕을 추종하는
군대는 과수원을 통째로 삼키려 들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부패와의 전쟁"을 주제로 열린 워싱턴 포럼 개막연설에서 앨 고어 부통령이
인용한 일화다.
부패척결운동에서 지도자가 차지하는 비중과 염직성(integrity), 그리고
솔선수범을 강조한 대목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지도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를 따라하는 습성이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최근 워싱턴을 찾은 한국지도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노태우.전두환 전대통령을 영어신세로 몰아넣은 수천억원대 뇌물사건은
전세계적 화제였고 그 파문은 심대했다.
그로인해 한국은 지구촌의 "1등 부패국"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주 워싱턴의 "반부패 포럼"이 주로 각국 감사원직원등을 위한 자리였음
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장관급을 파견한 것은 한국의 새정부가 반부패운동의
필요성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가를 전세계에 알리려는 몸부림
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이같은 새정부의 의지는 "거저 사과를 따먹으려 했던 왕"이
범할 뻔했던 우를 반복함으로써 크게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워싱턴에 온 고위관료가 기조연설을 하는 날 연단에는 그를 포함해 세사람의
패널리스트와 사회자가 있었다.
패널리스트들의 연설이 끝난 뒤 질의응답이 예정돼 있었다.
따라서 연사들은 다른 패널리스트의 연설을 자세히 듣고 이를 근거로
청중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려는 준비를 했어야했다.
이것이 청중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거니와 신정부의 반부패노력에 대한
홍보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패널리스트의 연설도중에
태연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포럼을 취재하고 있던 한국 TV카메라를 현장에서 빼내 국내시청자
를 위한 인터뷰를 요청하고 이를 녹화하기에 바빴다.
워싱턴을 찾는 한국의 지도자들이 진정한 외교는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국내용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그간의 비난과 관행을 그대로 답습한
장면이었다.
같은 시기에 워싱턴을 찾은 여당의 고위인사 또한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위치를 감안할 때 만나야 할 상대는 미국 의회의 여.야당대표나
외교위원장 쯤은 돼야 한다.
단순히 품위 차원이 아니라 의회 정책결정자들과의 원만한 외교를 위해서도
그렇다.
그러나 그가 만난 사람은 찰스 카트만 대사가 최고위급이었다.
"한국이 변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헤리티지재단에서 한 그의 연설은 충실
하면서도 잘 준비된 것이었다.
이제까지 워싱턴을 찾은 한국인으로서 그만한 수준을 유지한 사람도
드물었다.
하지만 그의 연설을 듣는 청중은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다.
해외홍보와는 거리가 먼 국내연설이나 다름없는 무대였다.
미국은 180여개 국가를 대상으로 외교를 하는 나라다.
따라서 국회의원을 포함한 미국의 지도자중 어느 누구도 시간을 비워두고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오랜 시간 일정조정을 거쳐야 한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식의 외교일정은 미국인들에겐 무례한 요구일 뿐
아니라 이런 요구를 관철시켜야 하는 한국외교관들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다.
설사 만남이 급조되더라도 소득이 있을 리 만무다.
다음에 나설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진정한 의미의 외교는 지도자들의 사려 깊은 처신과 자기 성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지 모른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4일자 ).
왕이 근처 과수원에서 사과 하나를 따먹었다.
그러자 그의 부하 장수가 과수원 주인에게 달려가 돈을 지불하고 돌아왔다.
이를 지켜 본 왕이 "과수원 주인은 짐이 따먹은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할텐데 돈까지 준 영문은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부하장수는 "왕께서 돈을 지불하지 않고 사과를 드시면 왕을 추종하는
군대는 과수원을 통째로 삼키려 들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부패와의 전쟁"을 주제로 열린 워싱턴 포럼 개막연설에서 앨 고어 부통령이
인용한 일화다.
부패척결운동에서 지도자가 차지하는 비중과 염직성(integrity), 그리고
솔선수범을 강조한 대목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지도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를 따라하는 습성이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최근 워싱턴을 찾은 한국지도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노태우.전두환 전대통령을 영어신세로 몰아넣은 수천억원대 뇌물사건은
전세계적 화제였고 그 파문은 심대했다.
그로인해 한국은 지구촌의 "1등 부패국"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주 워싱턴의 "반부패 포럼"이 주로 각국 감사원직원등을 위한 자리였음
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장관급을 파견한 것은 한국의 새정부가 반부패운동의
필요성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가를 전세계에 알리려는 몸부림
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이같은 새정부의 의지는 "거저 사과를 따먹으려 했던 왕"이
범할 뻔했던 우를 반복함으로써 크게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워싱턴에 온 고위관료가 기조연설을 하는 날 연단에는 그를 포함해 세사람의
패널리스트와 사회자가 있었다.
패널리스트들의 연설이 끝난 뒤 질의응답이 예정돼 있었다.
따라서 연사들은 다른 패널리스트의 연설을 자세히 듣고 이를 근거로
청중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려는 준비를 했어야했다.
이것이 청중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거니와 신정부의 반부패노력에 대한
홍보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패널리스트의 연설도중에
태연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포럼을 취재하고 있던 한국 TV카메라를 현장에서 빼내 국내시청자
를 위한 인터뷰를 요청하고 이를 녹화하기에 바빴다.
워싱턴을 찾는 한국의 지도자들이 진정한 외교는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국내용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그간의 비난과 관행을 그대로 답습한
장면이었다.
같은 시기에 워싱턴을 찾은 여당의 고위인사 또한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위치를 감안할 때 만나야 할 상대는 미국 의회의 여.야당대표나
외교위원장 쯤은 돼야 한다.
단순히 품위 차원이 아니라 의회 정책결정자들과의 원만한 외교를 위해서도
그렇다.
그러나 그가 만난 사람은 찰스 카트만 대사가 최고위급이었다.
"한국이 변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헤리티지재단에서 한 그의 연설은 충실
하면서도 잘 준비된 것이었다.
이제까지 워싱턴을 찾은 한국인으로서 그만한 수준을 유지한 사람도
드물었다.
하지만 그의 연설을 듣는 청중은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다.
해외홍보와는 거리가 먼 국내연설이나 다름없는 무대였다.
미국은 180여개 국가를 대상으로 외교를 하는 나라다.
따라서 국회의원을 포함한 미국의 지도자중 어느 누구도 시간을 비워두고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오랜 시간 일정조정을 거쳐야 한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식의 외교일정은 미국인들에겐 무례한 요구일 뿐
아니라 이런 요구를 관철시켜야 하는 한국외교관들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다.
설사 만남이 급조되더라도 소득이 있을 리 만무다.
다음에 나설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진정한 의미의 외교는 지도자들의 사려 깊은 처신과 자기 성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지 모른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