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화가 한운성씨의 그림소재는 특이하다.

찌그러진 콜라캔에서부터 문, 가로수 받침목, 신호등, 매듭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보면 그림의 대상으로는 부적합한 소재를 주로 다뤄왔다.

요즘엔 감이나 사과 복숭아 토마토 같은 과일을 집중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는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들을 대상으로 구상과 추상,
사실주의와 미니멀리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독자적 영역을 개척해
왔다.

서구의 진보적 미술경향을 능동적으로 수용, 우리미술계에서 소통될 수 있는
미술언어로 표현내려는 그의 작업은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역사를 압축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씨가 8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720-5114)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지난 93년이후 6년만에 갖는 개인전이다.

출품작은 70여점.

최근의 "과일"연작 40여점을 비롯 "매듭"연작, "철길"연작등 다양한 작품을
골라 금호미술관 1,2,3층 전관에 내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처음 발표하는 "과일"연작은 탄탄한 조형감각과 묘사력
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과일은 짙은 배경색에 형태 일부가 잠겨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과일 한개를 화면 중심에 대담하게 배치하고 그 주변형태를 생략하는 극적
대비감으로 인해 그의 과일은 독특한 시각적 이미지를 얻는다.

생활속에서 늘 봐왔기때문에 별 것 아닌것으로 여겨지는 과일들이 그의
작품에선 강렬한 존재감과 함께 관능적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미술평론가 김영택씨는 "한씨는 흔히 작품화하기 어려운 대상들을 그림에
끌어들여 하나의 실존적 차원으로 격상시켜 보여준다"고 평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대영박물관한국관 호암미술관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서울대 미대 교수.

< 이정환 기자 jh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