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86-0810"은 금융감독원의 음성정보서비스가 자동적으로 나오는
ARS 전화번호다.

공인회계사 시험일정, 민원접수및 분쟁조정, 증시자금이동 등에 대한
안내사항이 들어있다.

이 전화서비스를 가장 많이 애용하는 사람들은 아마 주식투자자들일 것이다.

고객예탁금의 증감 여부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체크해 볼 수 있기 때문
이다.

고객예탁금은 투자자들이 증권매매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넣어 놓은 돈을
말한다.

이 자금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현상으로
풀이된다.

반대로 예탁금이 계속 줄어들면 주식시장의 비관론도 커지는 게 증시의
상식이다.

따라서 금감원이 이처럼 중요한 증시지표를 잘못 합산해 전달하고, 또
엉터리 고객예탁금이 한순간이라도 증시에서 투자 지표로 활용됐다면
해프닝이 아닌 "사고"가 생긴 셈이다.

불행하게도 증시에서 엉터리 고객예탁금이 유통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금감원 감독6국이 지난3일자(발표는 4일 오후) 예탁금을 합산해 발표하는
과정에서 대형증권사가 보고한 예탁금의 단위를 착각해 3천2백98억원을
32억원으로 처리했다.

자연히 다음날엔 고객예탁금이 5천억원이상 급증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증권가에서는 뭉칫돈이 몰려왔다며 소동이 일어났다.

예탁금의 진상을 묻는 독자전화가 본사 증권부에 쇄도한 것은 물론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고객예탁금은 주식시장의 가장 중요한 지표중 하나라는 점과 증권
시장이 받은 충격을 감안하면 이 문제를 결코 작은 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먼저 사안을 단순 착오로 간단하게 내부적으로 묻어 버리려고 한 "폐쇄성"이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금감원내의 요즘 조직 분위기에서도 또다른 실수를 초래할 소지를 찾을 수
있어 우려가 더 커진다.

금감원 출범후 계속된 인사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아직도 남아 있어 직원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이헌재 금감원장의 "화학적 통합론"에 따른 직원들의 과도한 통합연수일정이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언론의 비판이 터져 결국 금감원이 연수계획
을 조정한 적도 있다.

금감원이 이번 예탁금 문제를 단순한 실수로 여기지 않는다면 내부조직과
직원사기를 다시 한번 점검해야 될 것이다.

< 양홍모 증권부 기자 y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