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서 물건을 산 뒤 점원에게 카드 대신 무선호출기(삐삐)를 내민다.

선불카드 기능을 하는 삐삐로 결제를 하기 위해서다.

물건 값을 치룰 만한 돈(전자화폐)이 삐삐에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무선호출사업자의 자동응답서비스(ARS)를 이용, 자신의 은행 계좌에 있는
돈을 삐삐로 당장 송금케 한 뒤 다시 결제를 한다.

백화점을 나온 뒤 버스를 탈때도 삐삐는 결제 수단이 된다.

삐삐를 버스 운전석 옆에 있는 인식기에 살짝 갖다 대면 된다"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부산 지역 무선호출사업자인 부일이동통신이 4월중 개시할 새로운
부가통신 서비스다.

창업한지 1년 밖에 안된 한 벤처기업이 이를 가능케 했다.

작년 3월 창업한 케이비테크놀로지(대표 조정일.39)가 부일이동통신에
연간 22만개의 전자화폐형 칩을 공급키로 한 것.

이 칩의 핵심기술인 운영체제(OS)를 케이비테크놀로지가 개발한 것이다.

칩 제조는 필립스가 맡고 스탠다드텔레콤은 이칩을 내장한 삐삐를
생산한다.

카드 칩 운영체제 시장에서 케이비테크놀로지는 후발주자다.

그러나 "기술 수준은 기존 국내외 운영체제를 앞섰다"고 조 사장은
자신한다.

세계 처음으로 접촉식(긁는)과 비접촉식(갖다 대는) 겸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용 범위를 크게 넓히는 콤비(Combi)형 스마트카드의 등장이다.

모은행이 인터넷을 통해 충전(충전)할 수 있는 전자화폐 개발을 의뢰한
것도 콤비카드에 반해서다.

6월께 선보일 예정이다.

모이동전화사업자와는 휴대폰에 전자화폐 칩을 넣기 위한 협의를
진행중이다.

주문이 몰리면서 창업 첫해인 작년에 5억원을 기록한 매출액이 올해엔
10배인 5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반도체 제조사와 프랑스의 카드 제조업체인 젬플러스가 전략적
제휴를 요청해오고 있을 정도다.

"전자상거래가 확산되면서 전자금융 시대가 도래했지만 외국에 의존해온
칩 운영체제가 국내 전자금융의 발전을 가로막았습니다"

조 사장은 외국기업이 국내 은행에 무리한 개발자금과 물량 보장을
요구하는 횡포를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몸담고 있던 중견 정보통신업체에서 전자화폐및 교통카드를 함께
개발했던 동료들과 대기업의 칩운영체제 연구인력들이 의기투합했다.

"안정된 직장을 왜 떠나냐며 부모님의 반대가 굉장했습니다"

조 사장은 법인 등기를 마친지 6개월 뒤에야 부모님께 창업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그가 사업을 하겠다며 부모님의 속을 썩힌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대우통신 연구원 시절인 10년전 대광고등학교 동창생과 친구등 5명이 일을
저지르기로 하고 창투사 투자유치 단계까지 갔다가 주위의 만류를 이기지
못해 포기한 적이 있다.

이들중 조 사장을 포함, 3명이 현재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창업은 했지만 주 시장인 금융권이 구조조정에 휘말린 탓에 처음부터
애로가 컸다.

고객(은행)을 살리기 위해 외자유치까지 주선하기도 했다.

콤비카드 공급계약이 성사 단계에 있던 동남은행이 퇴출 대상으로
떠오르자 외국계 카드사로부터의 외자 유치를 중개했던 것.

그러나 동남은행의 퇴출로 무산됐다.

창업기업으로서의 어려움도 컸다.

조 사장은 "연구원 개개인의 지명도는 높았지만 대부분 갓 생겨난
기업과의 거래를 주저했다"고 말했다.

외국기술 선호도 벽 이었다.

조 사장은 창업멤버들과 낮에는 영업, 밤에는 연구에 매달리면서 그 벽을
허물었다.

"칩 운영체제를 공급하는데 머물지 않을 겁니다.

신규 전자금융 서비스를 창출해 운영하는 사업까지 해볼 생각입니다"

조 사장은 전세계 스마트카드에 자사의 콤비 칩 운영체제가 표준으로
채택될 날이 오도록 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 오광진 기자 kj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