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대중국교지이후허지
불여택기교가친자이선인이위조야

여러 나라가 일시에 다가온 뒤에 국교통상을 허락하는 것은 그 가운데
비교적 친하게 지낼 만한 대상을 가려 뽑아 먼저 끌어들여 도움을 받는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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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문장가요 외교가인 운양 김윤식이 그의 천진봉사연기에서 한
말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청과의 종속관계에서 일단 벗어나 외형적으로는 자주국가
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으나 북쪽의 러시아와 동쪽의 일본이 조선으로의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김윤식은 영선사의 직함으로 70여명의 공학도를 인솔하고 선진
문명을 견학하기 위해 천진기기국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이홍장을 만나 그의 알선으로 "한미수호조약"의 체결을 추진하게
된다.

자주외교를 위한 첫 구상이었던 셈이다.

< 이병한 서울대 명예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