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공헌 계훈제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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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독재.민주투쟁을 위해 평생을 바친 계훈제 선생이 14일 오전 7시께 서울
도봉구 방학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타계했다.
향년 78세.
1921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이던 지난
45년 이철승 자유총연맹회장과 함께 "반탁운동"에 참가, 사회운동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선생은 박정희 군사정권시대인 69년에 3선개헌 반대투쟁위원회 상임운영위
원을 역임하며 장기독재 음모에 맞서 온몸으로 항거했다.
70년에는 "씨알의 소리" 편집의원을 맡는 등 반독재.민주화투쟁에 앞장서
왔다.
선생은 이로인해 75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수배를 받는 등 정권의 탄
압을 받았다.
선생은 지난 80년 등장한 전두환 정권때에도 반독재.민중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85년에는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 부의장을 맡아 인천의 한일전기 노동자 투
쟁현장에 내려갔다가 정체불명의 남자들에게 테러를 당해 장기간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계선생은 이후 민주화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87년 6.29항쟁 당시 전민련
상임고문을 맡았다.
91년에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상임고문을 맡아 활동하는 등 70세를
넘긴 노령에도 불구하고 민중운동에 몸바쳐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진주(69)여사와 아들 여곤(28)씨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
대병원 영안실.
(02)3675-0299
< 김문권 기자 m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5일자 ).
도봉구 방학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타계했다.
향년 78세.
1921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이던 지난
45년 이철승 자유총연맹회장과 함께 "반탁운동"에 참가, 사회운동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선생은 박정희 군사정권시대인 69년에 3선개헌 반대투쟁위원회 상임운영위
원을 역임하며 장기독재 음모에 맞서 온몸으로 항거했다.
70년에는 "씨알의 소리" 편집의원을 맡는 등 반독재.민주화투쟁에 앞장서
왔다.
선생은 이로인해 75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수배를 받는 등 정권의 탄
압을 받았다.
선생은 지난 80년 등장한 전두환 정권때에도 반독재.민중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85년에는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 부의장을 맡아 인천의 한일전기 노동자 투
쟁현장에 내려갔다가 정체불명의 남자들에게 테러를 당해 장기간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계선생은 이후 민주화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87년 6.29항쟁 당시 전민련
상임고문을 맡았다.
91년에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상임고문을 맡아 활동하는 등 70세를
넘긴 노령에도 불구하고 민중운동에 몸바쳐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진주(69)여사와 아들 여곤(28)씨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
대병원 영안실.
(02)3675-0299
< 김문권 기자 m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