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간의 17일 단독회담은 부분적인
이견에도 불구하고 여야간 대화 복원에 합의함으로써 신춘 정국에 봄기운을
감돌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를 거뒀다고 할수 있다.

이날 회동에서 합의된 내용은 대부분 구체적이기 보다는 다소 두루뭉실하게
공감대를 형성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정치판의 장기 대치국면에
식상해온 국민들에게 모처럼 여야 총재가 만나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 자체가 큰 소득이라고 할 만하다. 무엇보다 그동안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아있던 정치분야의 개혁을 위해 정치개혁 입법을 조속히 처리키로 합의한
것은 이번 총재회담이 거둔 가장 큰 실질적 성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6개항의 합의문 중 경제문제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대목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여야협의체"를 조속히 가동시킨다는 내용이다. 이는 작년 11월
여야 총재회담에서도 합의된 사항으로 협의체 구성 한 달도 못돼 흐지부지
되고 말았었다. 경제개혁과 실업문제 등 당면한 경제.민생현안들을 풀어나가
기 위해서는 여야의 공동노력이 절실하다고 볼 때 이같은 초당적 기구의
재가동은 더이상 미루어져서는 안된다.

이번 회담에서 두 지도자는 생산적인 정책경쟁을 다짐하고 미래지향적인
큰 정치를 해나가기로 합의했지만 이른바 "세풍"과 관련된 이 총재의 몇몇
측근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정국경색으로의 회귀를 가져
올 뇌관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또 정계개편 여부와 수도권 민심 향배 등 향후 정국에 분수령이 될 "3.30
수도권 재.보선"전이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어 여야 총재간 정국복원 합의가
얼마나 약효를 지속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개혁 입법의
조속한 처리에 합의했다고는 하나 선거구제변경과 정당명부제 도입 등 구체
적인 선거법 개정문제를 놓고 뚜렷한 시각차를 보임으로써 여야간 정치개혁
협상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총재회담은 정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여야 모두 공멸할 수
밖에 없다는 절박성에서 성사됐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위한 일시적 휴전이 돼서는 곤란하다. 그동안의 소모적 여야관계를 생산적
관계로 바꾸는 전환점이 돼야 하며 진정으로 성숙된 여야관계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번 합의는 지난번 총재회담 때처럼 단순한 선언
으로 끝날게 아니라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통해 성실하게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우리는 이번 여야 총재회담을 계기로 정치권 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생산적 대화가 확대되길 기대한다. 대통령과 야당총재가 진지한 자세로 국정
을 논의하는 모습에서 봄철 장외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노동계도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줄로 안다. 정국 혼란과 시국 불안이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는 일이
더이상 지속돼선 안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