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노동운동을 주도해온 기아그룹 4개계열사의 무분규선언은 국내노동운동
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일대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날 선언은 민주노총산하 강성사업장으로는 처음이어서 올해 국내노사관계
안정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아 노조의 무분규선언은 갈등과 대립 관계를 청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IMF사태이후 휴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

살아남은 기업들도 대량감원을 실시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종전처럼 노조가 제몫만을 고집할 경우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제 임금을 더 받고 덜 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를 잃느냐 마느냐하는 생존권 문제가 눈앞에 닥쳐온 것이다.

"무리한 요구->쟁의신청->파업->공권력투입->타결"의 악순환을 되풀이해온
기아가 산업평화선언을 다짐한 것도 이같은 상황인식 때문이다.

구조조정기를 맞아 노동계에도 강경일변도의 낡은 틀이 깨지고 있다.

대신 공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이제 실익없는 투쟁에 등을 돌리고 있다.

임.단협철만 되면 등장하던 "붉은 머리띠"와 "과격구호"는 이제 찾아보기
힘든 옛모습이 됐다.

노조도 "회사가 살아야 근로자들도 살아남을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고 있다.

"이런 분위기 탓에 노조집행부가 현장 근로자들의 정서를 무시하고 파업을
강행하면 실패하기 일쑤다"(노동부의 최관동 상황실장).

실제로 기아자동차와 함께 노동계의 쌍두마차인 현대자동차는 최근 파업을
강행하려다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

조합원들의 참여열기가 달아오르지 않았기때문이다.

당초 집행부가 예상했던 인원수의 3.8%만이 파업에 참가한 것이다.

10년이상 국내노동계의 대부격으로 "군림"해온 실세라고 믿기 힘든
모습이다.

산업평화를 다짐하는 기업들도 급속히 늘고 있다.

97년에 6백10개였던 노사화합선언업체는 IMF체제 이후인 98년 1천6백80개로
껑충 뛰었다.

1년새 3배이상 늘은 셈이다.

이런 흐름은 올들어서도 계속돼 17일 현재까지 1백개이상 사업장에서
무분규선언을 했다.

파국으로 치닫던 조폐공사는 지난달 무분규선언과 함께 노사협상을 원만히
해결했다.

기아의 노사화합은 이같은 현장의 분위기 확산에 가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올해 노사관계의 최대 현안이 "고용안정"이라는 것도 사업장의 악성분규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임금인상과는 달리 고용안정은 조합원의 전체이익과 합치하지 않기 때문에
결속력이 약할수 밖에 없다"(노동부 관계자)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이 관계자는 "구조조정의 물결을 파업으로 막을수 없다는데 대해 사업장의
근로자들이 공감하고 있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고용안정을 둘러싼 극한대립
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무튼 민주노총의 핵심사업장인 기아 노조의 화합선언으로 4월중순이후
정부와 전면투쟁을 벌이려는 민주노총은 치명타를 입게됐다.

또 공공연맹의 서울지하철노조등도 투쟁일정에도 적지않은 차질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의 대정부 정치투쟁도 강도높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 김광현 기자 kkh@ 김태완 기자 tw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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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아 노사관계 일지 ]

<>96. 6 임금협상관련 13일간 파업
<> 12 노동법개정관련 16일간 파업
<>97. 7 부도유예협약 대상업체로 지정
<>98. 2 일반직 근로자 1천여명 명퇴
<> 4 법정관리 개시
<> 12 현대에 인수결정
<>99. 1 7백49명 명예퇴직
<>99. 2.25~27 시한부 파업시도
<>99. 3. 9 고요오장 상여금 노사화합 등 현안문제에 잠정합의
<>99. 3.12 조합원 찬반투표 가결
<>99. 3.17 합의서 조인식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