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진 < 서울대 교수. 시인 >

가장 훌륭한 군주는 백성들이 다만 임금이 있다는 사실만을 알게 할 뿐이다.

그 다음가는 군주는 백성들이 그에게 친근감을 가지며 그를 칭찬하게 하는
군주이다.

제3류의 군주는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군주이다.

마지막 최하류급 군주는 백성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 군주이다.

군주에게 믿음성이 부족하면 백성들이 그를 믿지 않는다.

조심하여 그 말을 중히 여기고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

최선의 군주는 무위의 정치를 하기 때문에 공을 이루고 일을 성취하여도
백성들은 알지 못하고 내가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노자의 도덕경 18장의 내용이다.

백성들이 통치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한가롭고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는
것이 바로 노자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정치질서의 모습이다.

물론 아득한 옛적 현인 노자의 고매한 이상이긴 하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보다 높은 위치에서 굽어보고 더 깊고 현묘한 근원적인
데서 인간 이전의, 인간 이상의 본질을 살피려 했던 그의 생각은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살아내야 하는 오늘의 우리에겐 지극히 단순 명쾌한 삶의 지혜
가 될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매일 신문과 TV등에서 수많은 군주들, 즉 정치인들을 만나야 한다.

노자시대처럼 한 사람의 군주는 물론 없지만, 옛 군주가 담당하던 몫을
책임진 정치인들 모두는 위의 4등급중 어느 한 급수에는 속할 것이다.

그저 나날을 무사 안전하게 살고싶을 뿐인 우리 국민들은 나 아니면 안된다
는 또는 나는 이러이러한 큰일을 기차게 해냈으니 훌륭한 정치인으로 인정하
라는 강요식의 정치인들의 얼굴과 이름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정말이지 우리 국민들은 그냥 우리나라에 정부각료들과 국회의원들 등의
정치인들이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싶다.

그 이상은 알아야 할 필요가 없이도 살수 있는 세상에서 초저녁쯤에는
마음놓고 다니고 싶을 뿐이다.

한달전쯤이었다.

저녁 9시 반쯤 바로 집앞에서 핸드백을 날치기 당했다.

모두들 그만했음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라고 했다.

자동차가 앞을 막아 멈춰서니 장정 몇이 내려서 지나가는 사람을 달랑 들어
차안에 밀어넣고 달아나는 일도 당하는 판에 그쯤은 운이 좋았다고들 했다.

나도 그렇게 여기려 했으나 생각해보자.

저녁 9시 반쯤 바로 자기집앞도 마음놓고 다닐 수 없다면 아무리 IMF 상황
이라 해도 어찌 사람이 살만한 세상인가.

IMF사태가 모든 양해의 구실일 수도 없다.

"대문밖의 저승"이라는 옛말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옛말이 지금에도 적용된다면 노자 도덕경의 4군주유형이라 해서
왜 현재정치에도 아니 적용되랴.

더구나 오늘 저녁 뉴스는 강남주택가에서 부녀자를 승용차에 납치하여 끌고
다니면서 갖은 포악한 짓을 하고는 가족들에게 천여만원씩을 받아내는 강도짓
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했다.

농촌의 농민들은 가축과 1년농사를 도둑맞고, 도시민들은 날치기 아니면
납치를 당하는 이 현실은 정치의 책임이 아닌가.

나라 잘 다스리겠다고 거품물던 선거약속들은 어디 가고 없는가.

우리는 지금 먹고사는 일에서부터 순간순간의 안전 등 생존일체를 국민
각자가 알아서 책임지며 살고있다.

그렇다면 정치가 하는 일은 뭔가.

초저녁에도 제집밖 제집골목에서 납치 폭행당하는 국민들에게 뭘 그리 잘했
노라고 그 얼굴 그 이름들을 하루에도 몇번씩 마주하게 하는가.

옛 군주들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고니 과니 불곡이니 하는 자신의 칭호로
겸허를 나타냈으나, 오늘 우리의 정치인들은 너무도 어마어마한 압도적
과시적 태도로 자기 선전에 급급하여, 존경은 커녕 혐오감마저 느끼게 하고
있다.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던 구조조정에서도 성역이었던 정치계가 우리국민에게
왜 필요한가 묻고 싶다.

직장에서 내쫓겨 무법이 판치는 거리로 내몰린 국민들에게 네 안전은 네
책임이라면 도대체 정치는 무엇이며 국민은 세금을 왜 내왔단 말인가.

세금 대신 각자는 사설 경호원이라도 고용해야 옳지 않은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