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출 < 미국 버클리대 교환교수. 외교학 >

한국의 대북 접근 전략인 일괄타결 방안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
의견차이가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구체성이 결여된 추상적 전략방향으로 우리가 내세운 일괄
타결과 구체적 사안이 진행되고 있는 미.북한 관계에서 그 차이점이 나타
난다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은 대 북한 접근의 유연성과 포용성이라는 대전제에는 일치하고
있으나 미국의 국내정치적 여건, 특히 의회내의 막연한 포용정책에 대한
반대의견과 미.북한 사이에 진행되는 구체적 교섭과정이라는 현실적 문제
때문에 우리의 막연한 일괄타결전략을 무제한적 포용정책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사이에 나타난 문제는 한.미 관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일괄타결 전략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 그 중요성
이 있다.

햇볕정책과 일괄타결 정책은 단순히 과거정권과의 차별성에 그 특징이 있다
기 보다는 나름대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확보 이전에 혼란된 대북 접근전략
의 총정리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와 전략적 고려가 필수적
이다.

첫째, 이번 미국과의 관계에서 나타났듯이 일괄타결에서 일괄의 의미가
애매성과 혼돈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출발에 불과하다.

올려놓은 후에는 다시 여러 문제들의 상호관계, 우선순위가 큰 과제로
등장하게 된다.

이에 관한 구체적 전략이 전제돼있지 않는 한 일괄 타결은 애매성으로
인해 주변국가와의 마찰만을 초래할 것이다.

이는 일괄타결정책이 주변국가와의 밀접한 협조없이는 그 성공이 어렵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것은 한반도 관련문제가 현재 주변국,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과 일괄타결정책이 성공하면 할수록 주변국가의 협조 필요성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그 좋은 예다.

이는 역으로 일괄타결이 성공적으로 진행될수록 성공을 해칠수 있는
요소가 동시에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4자회담 제의시 등장했던 미.북한 문제와 남북한 문제의
구별이 가능한가이다.

이것은 그 당시에도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일괄타결정책과 크게 상충하는
부분이 없지않다.

바로 이 점이 일괄타결정책의 구조적 한계이면서 도전이며 주변국의 협조가
필요한 이유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북한의 태도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여러 경로를 터놓으면서 기본전략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두어왔다.

동시에 그 관계에서도 단기적으로는 안보전략을 통한 경제이익의 극대화와
중기적으로는 정권안정을 위한 체제구축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북한이 일괄타결에 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금까지 추구하던
목적이 영향을 받지 않거나 최대한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와 이를 위한 유인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정부가 택한 정책노선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고 본다.

주변 국가와 북한과의 수교 인정, 정경분리 원칙의 채택,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한다는 발언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미 카네기 재단의 셀릭 해리슨이 지적했듯이 남북한관계에서
주도권 획득을 위한 나머지 지나친 햇볕정책과 일괄타결 주장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현재 다각도로 진행되는 또는 진행되고 있지 않은 대화채널을
어떻게 일괄타결안에서 소화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특히 속도와 주체가 다른 각종 대화채널의 상호 관련과 영향을 유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것은 곧바로 대북 접근전략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전략적 구체성을
띠어야 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국내적으로도 경제 상황이 호전됨에 따라 지금까지 잠잠했던 대북
논의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햇볕정책에서도 문제가 되었듯이 일괄타결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내부적 기준과 궁극적으로 그 정책의 종말을 결정할 수 있는 기준 설정
이 필요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