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은 IMF한파가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윤곽은 뚜렷하지 않지만 성장의
징후는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공연문화 소비시장의 잠재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과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연예술인들의 역량이 상당한 수준에 와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11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페스티벌".

오페라페스티벌은 총 15회공연에 2만4천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아 71%의
객석점유율을 기록했다.

특히 유료객석점유율은 무려 79.2%에 달했다.

관객 10명중 8명이 자기돈으로 입장권을 구입해 오페라를 본 셈이다.

한 해 전인 97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오페라의 평균 유료객석점유율이
27%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보면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나라전체가 IMF한파에 휩싸여 문화상품 소비심리가 크게 움츠러든
상황속에서 일궈낸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오페라페스티벌은 자체역량으로 순수공연예술을 21세기의 고부가가치
상품화해 하나의 산업으로서 뿌리 내리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공연예술의 경제적 상품화와 산업화의 토대인 소비시장의 잠재력도 결코
작지 않음을 확인했다.

우수한 품질의 상품(공연)만 만들면 얼마든지 수요(관객)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소극장 연극무대에서도 그런 사례는 적지 않았다.

IMF한파로 일부 극장이 폐쇄되고 연극협회 소속 극단중 3분의1 이상이 단
한편의 공연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지만 보조좌석까지 놓고도 관객을
돌려보내야 하는 공연도 있었다.

지난해 9월부터 올 1월말까지 세차례나 연장 공연에 들어갔던 극단 목화의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가 그랬다.

"새들은..."는 이 기간중 1백73회 공연에 2만2천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공연이 이어지면서 입소문이 퍼져 지방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단체관광객
이 찾기도 했다.

협찬수입을 제외하고 입장권판매수입만 1억3천만원이 넘었다.

비용을 제하고 5천만원이 넘는 순수입을 남겼다.

같은 기간에 대학로 무대에 올려졌던 "매직타임" "의형제"등도 관객동원
측면에서 짭짤한 재미를 봤다.

지난달 공연됐던 "신의 아그네스"와 현재 공연중인 "손숙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그 힘은 역시 작품의 질이다.

좋은 무대엔 관객이 있게 마련이란 뜻이다.

연극에 대한 투자움직임은 또 다른 빛을 비추고 있다.

컴퓨터속기학원을 운영하는 넥스웨이인터내셔널의 정태섭 대표는 최근 연극
공연기획사인 이다에 앞으로 2년간 5천여만원을 지원키로 했다.

극단 대표의 면식에 의한 광고협찬과 같은 기존 방법과는 다른 투자개념의
지원이다.

정 대표는 친목회원들과 연극지원모임을 만들고 투자회사도 세워 연극계
발전을 위한 지원규모를 확대해나간다는 장기구상을 갖고 있다.

입장료 수입만으로는 재정자립을 꾀하기 힘든 공연예술계는 정 대표의
투자지원소식에 큰 힘을 얻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공연예술에 산업의 옷을 입히기는 아직 어렵다.

현재의 상황에서 공연활동만으로 재투자의 여력을 확보하기는 힘들다.

단체를 유지할 정도의 비용을 뽑기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최우선 과제는 공연예술분야의 파이를 키우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극 뮤지컬 오페라 콘서트 등 영화를 제외한 공연예술분야
전체의 한해 입장료 수입은 5백억원을 조금 웃돈다.

문예진흥기금(6%)을 근거로 추산한 수치다.

기업체 협찬수입이나 기타 판매수입 등을 포함해도 1천억원선을 밑돌 것이란
게 이 분야 관계자들의 계산이다.

2천억원선을 훨씬 넘는 비디오시장 만큼도 안된다는 얘기다.

기본시장이 커야 공연수익으로 재투자의 기회를 늘리고, 이는 더 좋은 작품
제작으로 이어져 시장을 확대재생산하는 선순환구조가 정착될 수 있다.

지금의 시장규모로는 이를 기대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몇가지 과제를 해결하면 공연예술을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하다.

우선 좋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게 관건이다.

그 역량은 이미 일부 공연에서 확인됐다.

극장을 중심으로 "숨어 있는" 관객을 찾아 끌어들일 수 있는 과학적 마케팅
기법의 도입도 필수적이다.

무대디자인 연기 연출 등 각 부문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인정해 독창성을
살리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대부분 주먹구구식에 의존하고 있는 공연단체의 운영에 기업경영 기법을
도입, 경영의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공연예술작품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부문별 분업체제 구축도 산업화의
밑거름이다.

소프트웨어를 담을 수 있는 하드웨어 쪽의 개선도 필요하다.

극단이 안정적으로 장기공연할 수 있는 전용공연장이 확보돼야 한다.

오페라나 뮤지컬 등 비용이 많이 드는 공연일수록 그렇다.

공연예술 외적인 측면도 함께 활성화해야 하나의 산업으로서 공연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회의나 전시산업, 스포츠이벤트까지를 공연예술분야와 연계시키는 포괄적
활성화대책이 수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순수예술 부문에 대한 공적 지원을 확대하고 단일작품에 대한 지원규모도
늘려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