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치 <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 >

최근 한.일어업 협상과 관련한 우리와 일본의 대처방식-그것의 잘잘못은
전문가의 판단에 맡긴다-을 보면서 옛일을 생각했다.

18년전 독일 막스플랑크 국제형사법연구소에서 연수할 당시 나의 연구과제는
"한.독 검찰제도의 비교연구"라는 꽤 거창한 것이었다.

그런데 같이 연수를 받던 도다라는 일본 검사의 연구과제는 인터폴의
활동과 관련한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내가 큰 것을 대충 "훑은" 것이라면 그는 작은 것을 철저히 "파고든" 것인
셈이다.

이렇듯 우리는 큰 것에만 매달리다 보니 작은 것, 사소한 것을 잊어버리거나
아예 경시하는 경향마저 있다.

우리 국민들이 사건처리와 관련해 검찰을 보는 시각도 그렇지않은가
생각된다.

일상적인 형사사건 수만 건을 적절히 처리했는가의 여부보다는 정치인
1명의 구속과 같은 이른바 "큰" 사건 수사로 검찰의 위상을 평가한다.

그러나 검찰의 가장 귀중한 업무는 일상적인 여러 범죄나 사건, 이른바
"작은" 사건을 그야말로 정의와 형평에 맞게 국민의 편에 서서 처리하는
것이다.

유명한 법철학자인 라드부르흐(Gustav.v.Radbruch)도 "가장 소중한 것은
큰 사건이나 정치적인 사건에서가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사건
에서 생긴다"라고 충고하고 있다.

옳은 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거창한 것에만 매달린 나머지 에머슨(R.W.Emerson)의
말과 같이 "영웅의 국가에서 한 대의 외바퀴 수레를 국가처럼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한" 서민들의 일에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의 아픔과 눈물, 그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를 수사와 소추행위를
통해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바로 이 "사소한 사건"들을 처리하느라 밤 늦게까지 퇴근도 못한
채 두꺼운 기록과 씨름하며 며칠이고 견디기 힘든 고뇌를 반복해야하는
검사들.

그들의 열정을 잊은 것은 아닌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