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중에는 대중사회 속에서 스스로 생겨난 듯한 형태를 취하지만
실은 대중 매체와 출판사가 만들어낸 것들이 있다.

그런 베스트셀러에는 대중의 기호에 맞는 어떤 요소들이 삽입된다.

손수건 없이는 그 클라이막스를 돌파할 수 없는 멜로드라마처럼 가짜
카타르시스를 준다든지 대중에게 각인되기 쉽도록 자극적인 요소들을
삽입한다.

이런 책의 광고는 늘 내용이 획기적이라든가 감동적이라든가 깊은 깨달음을
준다고 선전하지만, 실은 베스트셀러 독자의 대열에 끼었다는 연대감 이외에
대중에게 주는 것은 별로 없다.

제조된 베스트셀러는 단지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을
교묘히 속임으로써 때로 그 작가와 내용을 기만하기도 한다.

폭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총칼이나 주먹을 들이대고 상대의 의지와 생명을 말살하거나 모욕을 주는
것도 폭력이지만, 다수라는 이름을 업고 개인의 특성을 전체의 이름 아래
묻어버리고 개인을 깊은 무력감에 빠지게 하는 것 또한 폭력이다.

"뭣땜에 팔리지도 않는 책을 재판씩이나 찍어요? 팔리지도 않는 책은
갖다놔서 뭐합니까? 이 책은 1백만 부나 팔렸는데 나쁜 책이라니요?"라는
말들 속에 담긴 안 팔리는 책은 별 볼 일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은 분명 숫자의 폭력이며 베스트셀러의 폭력이다.

서점이나 도서대여점은 물론 근처 도서관에서조차도 정말 구하고 싶은 좋은
책은 이 베스트셀러들의 홍수에 밀려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동의할 수 없는 견해가 전체의 이름으로 지배적이 될 때 그것은 개인의
정신을 파괴하고 사회를 엉뚱한 길로 나가게 한다.

모든 특수한 개인을 보편적 대중의 이름 아래 굴복시키는 사회는 창의성을
잃고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저질 베스트셀러는 취급 안하겠다는 왕따 서점 주인이나 왕따 도서관장은
이 땅에 없을까 하는 왕따적인 생각을 해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7일자 ).